BIBLIA 성경공부 시리즈 – 사사기 [8] 여섯번째, 일곱번째 사사 돌라와 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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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 사밀에 살았던 잇사갈 사람 돌라
사사들 가운데에서 그 이야기의 분량이 조금 적다고 해서 그 사사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덜 중요한 사사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분량이 적은 사사들의 경우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역사를 기록할 때 가지고 있는 역사 자료의 분량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짧게 소개했을 수도 있겠고요. 그 역사가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史觀]에 따라서 사사들의 이야기의 분량이 결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돌라와 야일을 다른 사사들에 비해서 역사적으로 무게감이 적었던 사사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면에서 사사들을 대(大) 사사와 소(小) 사사로 나누는 것은 편견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돌라와 야일은 어떤면에 있어서는 그 앞의 이야기인 아비멜렉의 이야기와 뒤따라 나오는 입다의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아비멜렉의 시대를 닫는 이야기로 돌라를, 입다 이야기로 들어가는 문과 같은 역할로 야일을 소개합니다.
"아비멜렉 다음에는 잇사갈 지파 사람 도도의 손자이며 부아의 아들인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는데, 그는 에브라임의 산간지방에 있는 사밀에 살고 있었다."(삿 10:1)
성경에서 돌라의 출신과 그가 살았던 지역을 이야기하는데요. 잇사갈 지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잇시갈 지파 사람이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살았다고 하네요. 에브라임 산간 지방이라고 하면, 주로 에브라임 지파의 땅이면서 일부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된 요단강 서쪽의 남쪽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밀(히. 샤밀 שָׁמִיר)이 현재 어느 곳인지 정확히 알수 없습니다만, 어찌되었든 에브라임 지파 또는 므낫세 지파 땅의 어디일 겁니다.
고대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이사 하기가 쉽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특히나 더 그랬습니다. 여호수아가 지파 별로 땅을 나누어 주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땅에 거주하면서 대를 이어서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전통이지요. 땅의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이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래서 한 개인이 특정한 땅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 그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땅을 재산으로 삼아서 한 사람이 땅을 독과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해서 땅을 파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땅을 팔아도 친족, 그리고 같은 지파에 있는 누구에게 팔고 희년에 다시 돌려받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땅에 대한 신앙의 전통입니다(레 25). 그러니, 일시적으로 토지의 소유권이 이전될 수는 있어도, 다시 돌려받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영원히 이주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것이 온전히 지켜지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또 이렇게 땅을 사주는 것이 고엘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고엘의 의무와 희년의 의무를 잘 지켜나간다면,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나갈 법률적인 기초를 가지고 있는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공동체였습니다. 당시의 어떤 나라도 이런 법령을 없었으니, 혁명적인 율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에 의하면, 한 지파에 속한 사람이 다른 지파의 땅에 살 이유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잇사갈 지파의 사람인 돌라가 자기 땅을 떠나서 다른 지파 땅으로 가서 살았다고해요. 아마도 하나님의 유업으로 받은 땅에서 살수 없을 만한 딱한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 사정이 어떤지는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지요. 이렇게 자기 지파는 잇사갈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서 살수가 없어서 다른 지파의 땅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나그네'입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약자이고, 그 사회에서는 빈곤층으로 내려갈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지요.
사실 하나님의 법에 따르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생계를 위해서 잠시 땅을 사고 파는 행위는 있을 지언정, 빈곤층으로 떨어져 고통 받는 사람들은 없어야 합니다. 또 땅을 잠시 팔았을 지라로 희년이 되면, 다시 이 땅을 돌려 받게 되니, 한 가족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매 50년 마다 모든 것이 원상태도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레 25:28).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옆에 있는 가족들과 가까운 친족들은 고엘로서 돌봄의 의무가 있습니다(레 25:25). 그러나 자기 살던 지파의 땅을 떠나 다른 지파의 땅에 까지 가서 살아야할 지경이 되었다면, 아마도 이 시대는 이런 돌봄의 의무[히. 고엘 גֹּאֵ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짧은 돌라의 출신 이야기를 통해서 , 사사 시대에 벌서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소홀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는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의 명령도 소 귀에 경 읽기 마냥 흘려 보내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돌라의 가정이 살고 있는 성읍이 사밀이라는 것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에둘러 말하는 아비멜렉 이후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사밀이라는 마을의 이름의 어근이 '가시덤불'이거든요. 아비멜렉의 이야기에서 요담이 사람들에게 비유로 아비멜렉을 비꼬아 이야기하며, 아비멜렉을 '가시나무'[히. 아타드אָטָד]에 견주어 이야기하였고, 그의 통치가 가시나무 가운데에 나오는 불과 같을 것이라고 외쳤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아비멜렉과 연결되는 사사 돌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던 시대가 꼭 가시 덤불이 광야를 뒤덮은 듯, 고통의 시대였다는 것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돌라를 시대의 구원자로 부르셨습니다. 돌라의 집안은 에브라임 산지에서 영원한 나그네와 같은 집안이었습니다. '돌라' תּוֹלָע 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는 '벌레'입니다. 자주색 염료를 채취하는데 이용되는 벌레인데요. 에브라임 산지에서 돌라와 그 가족의 위치는 그 이름처럼 벌레같은 처지였습니다. 나그네의 삶이 다 그렇습니다. 권력과도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권력자들의 가시덤불(사밀) 같은 통치로 고통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힘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벌레같은 돌라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 길르앗 사람 야일
그런데 돌라와 완전히 배치되는 인물이 바로 뒤, 3,4,5절에 곧바로 나옵니다.
"그 뒤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른 마리의 나귀를 타고 다녔고, 성읍도 길르앗 땅에 서른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 성읍들은 오늘날까지도 하봇야일이라 불린다. 야일은 죽어서 가몬에 묻혔다."
길르앗 사람 야일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해서 우리 말 성경은 22년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고 소개합니다만, 이 구절을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2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또는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의사결정을 도맡았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별 다를 것 없어 보이고 평범해 보이지만, 아주 작은 이 차이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이전의 돌라를 설명할 때는, "잇사갈 지파 사람 도도의 손자이며 부아의 아들인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삿 10:1)라고 돌라를 소개한 역사가가 야일을 설명할 때에는 매우 건조하게 그냥 '다스렸다'며 휙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의사결정의 최고 책임자로 22년 동안 있었지만, 그 자리에 썩 어울리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야일이 그 22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고발합니다. 아들이 서른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를 많이 두는 것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들에게 좋지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아들이 많았다는 말이 꼭 아내가 많았다는 말은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아무리 노력하여도, 이 사람의 아들들이 나귀 30마리를 타고 다녔다는 것은 좀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의 광야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대 광야의 승용차가 나귀였습니다. 낙타는 화물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성경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사사 야일의 아들들 모두가 승용차 한대씩 몰고 다녔다는 이야기인데요. 아버지를 잘 만난 금수저라는 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아들들이 전부 길르앗에서 성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여호수아 시대에 갓 지파에 속한 대표적인 성읍들을 열거할 때, 그 수가 대략 열 한개입니다(수 13:24-28). 물론 '○○지역'이라고 말한 곳에 또 성읍들이 몇개 더 있다손 치더라도 그 수가 서른이 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구도 늘어나고 마을들도 더 생겨났겠지요. 그래서 성읍의 수가 늘었을 텐데, 그 때마다 모두 야일의 손아귀에 들어간다고 쳐야, 야일이 성읍 30개를 소유할 수 있는 겁니다. 야일이 가진 사유재산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냥 갓 지파 전체가 야일의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만큼 말이지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재산도 많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좋고, 그 재판도 공평하여 하나님의 영이 늘 함께 했던 야일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원'한 나그네 인생의 벌레같은 돌라와는 달리 야일에 대해서는 그저 평범하게 '다스렸다'는 말로 슬며시 지나가 버리면서 야일이 다스렸던 그 시대를 평가절하해 버립니다. 아니 평가절하를 하다 못해, 그 야일의 시대에 권력과 부를 한 손에 쥐고 있었던 야일의 아들들이 오로지 아버지의 후광으로 재산을 증식하고 권력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이스라엘 공동체로서 가져야할 역사의식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했던 무능한 이들이었는가를 고발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라'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야일(히. 야이르 יָאִיר)은 오로지 자기와 자기 가족이 드러나기 만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한 공동체의 지도자라면 정말 끔찍한 일인데요. 그 아픈 이야기가 이어지는 입다의 이야기에서 드러납니다.
사사들 가운데에서 그 이야기의 분량이 조금 적다고 해서 그 사사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덜 중요한 사사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분량이 적은 사사들의 경우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역사를 기록할 때 가지고 있는 역사 자료의 분량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짧게 소개했을 수도 있겠고요. 그 역사가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史觀]에 따라서 사사들의 이야기의 분량이 결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돌라와 야일을 다른 사사들에 비해서 역사적으로 무게감이 적었던 사사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면에서 사사들을 대(大) 사사와 소(小) 사사로 나누는 것은 편견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돌라와 야일은 어떤면에 있어서는 그 앞의 이야기인 아비멜렉의 이야기와 뒤따라 나오는 입다의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아비멜렉의 시대를 닫는 이야기로 돌라를, 입다 이야기로 들어가는 문과 같은 역할로 야일을 소개합니다.
"아비멜렉 다음에는 잇사갈 지파 사람 도도의 손자이며 부아의 아들인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는데, 그는 에브라임의 산간지방에 있는 사밀에 살고 있었다."(삿 10:1)
성경에서 돌라의 출신과 그가 살았던 지역을 이야기하는데요. 잇사갈 지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잇시갈 지파 사람이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살았다고 하네요. 에브라임 산간 지방이라고 하면, 주로 에브라임 지파의 땅이면서 일부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된 요단강 서쪽의 남쪽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밀(히. 샤밀 שָׁמִיר)이 현재 어느 곳인지 정확히 알수 없습니다만, 어찌되었든 에브라임 지파 또는 므낫세 지파 땅의 어디일 겁니다.
고대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이사 하기가 쉽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특히나 더 그랬습니다. 여호수아가 지파 별로 땅을 나누어 주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땅에 거주하면서 대를 이어서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전통이지요. 땅의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이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래서 한 개인이 특정한 땅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 그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땅을 재산으로 삼아서 한 사람이 땅을 독과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해서 땅을 파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땅을 팔아도 친족, 그리고 같은 지파에 있는 누구에게 팔고 희년에 다시 돌려받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땅에 대한 신앙의 전통입니다(레 25). 그러니, 일시적으로 토지의 소유권이 이전될 수는 있어도, 다시 돌려받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영원히 이주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것이 온전히 지켜지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또 이렇게 땅을 사주는 것이 고엘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고엘의 의무와 희년의 의무를 잘 지켜나간다면,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나갈 법률적인 기초를 가지고 있는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공동체였습니다. 당시의 어떤 나라도 이런 법령을 없었으니, 혁명적인 율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에 의하면, 한 지파에 속한 사람이 다른 지파의 땅에 살 이유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잇사갈 지파의 사람인 돌라가 자기 땅을 떠나서 다른 지파 땅으로 가서 살았다고해요. 아마도 하나님의 유업으로 받은 땅에서 살수 없을 만한 딱한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 사정이 어떤지는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지요. 이렇게 자기 지파는 잇사갈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서 살수가 없어서 다른 지파의 땅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나그네'입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약자이고, 그 사회에서는 빈곤층으로 내려갈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지요.
사실 하나님의 법에 따르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생계를 위해서 잠시 땅을 사고 파는 행위는 있을 지언정, 빈곤층으로 떨어져 고통 받는 사람들은 없어야 합니다. 또 땅을 잠시 팔았을 지라로 희년이 되면, 다시 이 땅을 돌려 받게 되니, 한 가족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매 50년 마다 모든 것이 원상태도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레 25:28).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옆에 있는 가족들과 가까운 친족들은 고엘로서 돌봄의 의무가 있습니다(레 25:25). 그러나 자기 살던 지파의 땅을 떠나 다른 지파의 땅에 까지 가서 살아야할 지경이 되었다면, 아마도 이 시대는 이런 돌봄의 의무[히. 고엘 גֹּאֵ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짧은 돌라의 출신 이야기를 통해서 , 사사 시대에 벌서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소홀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는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의 명령도 소 귀에 경 읽기 마냥 흘려 보내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돌라의 가정이 살고 있는 성읍이 사밀이라는 것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에둘러 말하는 아비멜렉 이후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사밀이라는 마을의 이름의 어근이 '가시덤불'이거든요. 아비멜렉의 이야기에서 요담이 사람들에게 비유로 아비멜렉을 비꼬아 이야기하며, 아비멜렉을 '가시나무'[히. 아타드אָטָד]에 견주어 이야기하였고, 그의 통치가 가시나무 가운데에 나오는 불과 같을 것이라고 외쳤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아비멜렉과 연결되는 사사 돌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던 시대가 꼭 가시 덤불이 광야를 뒤덮은 듯, 고통의 시대였다는 것을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가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돌라를 시대의 구원자로 부르셨습니다. 돌라의 집안은 에브라임 산지에서 영원한 나그네와 같은 집안이었습니다. '돌라' תּוֹלָע 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는 '벌레'입니다. 자주색 염료를 채취하는데 이용되는 벌레인데요. 에브라임 산지에서 돌라와 그 가족의 위치는 그 이름처럼 벌레같은 처지였습니다. 나그네의 삶이 다 그렇습니다. 권력과도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권력자들의 가시덤불(사밀) 같은 통치로 고통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힘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벌레같은 돌라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 길르앗 사람 야일
그런데 돌라와 완전히 배치되는 인물이 바로 뒤, 3,4,5절에 곧바로 나옵니다.
"그 뒤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른 마리의 나귀를 타고 다녔고, 성읍도 길르앗 땅에 서른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 성읍들은 오늘날까지도 하봇야일이라 불린다. 야일은 죽어서 가몬에 묻혔다."
길르앗 사람 야일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해서 우리 말 성경은 22년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고 소개합니다만, 이 구절을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2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또는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의사결정을 도맡았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별 다를 것 없어 보이고 평범해 보이지만, 아주 작은 이 차이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이전의 돌라를 설명할 때는, "잇사갈 지파 사람 도도의 손자이며 부아의 아들인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삿 10:1)라고 돌라를 소개한 역사가가 야일을 설명할 때에는 매우 건조하게 그냥 '다스렸다'며 휙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의사결정의 최고 책임자로 22년 동안 있었지만, 그 자리에 썩 어울리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야일이 그 22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고발합니다. 아들이 서른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를 많이 두는 것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들에게 좋지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아들이 많았다는 말이 꼭 아내가 많았다는 말은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아무리 노력하여도, 이 사람의 아들들이 나귀 30마리를 타고 다녔다는 것은 좀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의 광야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대 광야의 승용차가 나귀였습니다. 낙타는 화물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성경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사사 야일의 아들들 모두가 승용차 한대씩 몰고 다녔다는 이야기인데요. 아버지를 잘 만난 금수저라는 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아들들이 전부 길르앗에서 성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여호수아 시대에 갓 지파에 속한 대표적인 성읍들을 열거할 때, 그 수가 대략 열 한개입니다(수 13:24-28). 물론 '○○지역'이라고 말한 곳에 또 성읍들이 몇개 더 있다손 치더라도 그 수가 서른이 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구도 늘어나고 마을들도 더 생겨났겠지요. 그래서 성읍의 수가 늘었을 텐데, 그 때마다 모두 야일의 손아귀에 들어간다고 쳐야, 야일이 성읍 30개를 소유할 수 있는 겁니다. 야일이 가진 사유재산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냥 갓 지파 전체가 야일의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만큼 말이지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재산도 많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좋고, 그 재판도 공평하여 하나님의 영이 늘 함께 했던 야일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원'한 나그네 인생의 벌레같은 돌라와는 달리 야일에 대해서는 그저 평범하게 '다스렸다'는 말로 슬며시 지나가 버리면서 야일이 다스렸던 그 시대를 평가절하해 버립니다. 아니 평가절하를 하다 못해, 그 야일의 시대에 권력과 부를 한 손에 쥐고 있었던 야일의 아들들이 오로지 아버지의 후광으로 재산을 증식하고 권력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이스라엘 공동체로서 가져야할 역사의식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했던 무능한 이들이었는가를 고발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라'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야일(히. 야이르 יָאִיר)은 오로지 자기와 자기 가족이 드러나기 만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한 공동체의 지도자라면 정말 끔찍한 일인데요. 그 아픈 이야기가 이어지는 입다의 이야기에서 드러납니다.
BIBLIA 성경공부 시리즈 – 사사기 [8] 여섯번째, 일곱번째 사사 돌라와 야일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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