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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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7
사람들이 저마다 믿는 것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는다. 내가 누구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대부분은 오만방자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힘을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나! 그러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잠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아비멜렉. 그는 네게브의 맹주였다. 브엘쉐바 아랫쪽 남쪽 유대광야 전체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의 명성은 그 주변의 모든 지역의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다. 블레셋 평야의 동쪽 끝자락인 비옥한 그랄에 왕노릇하면서 풍요로운 블레셋 평야가 주는 경제적인 여유로움과 그 풍요로움으로 사들인 아나톨리아 출신의 군대장관 비골은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나라의 경제적인 넉넉함과 그 나라의 군사적인 우위를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아비멜렉에게도 두려운 존재가 있었다.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왕도 아니다. 그런데, 그의 가솔들은 왠만한 군사들을 뺨치는 놀라운 전쟁수행능력이 있었다 (창 14). 게다가 그에게는 그 뒤를 봐주는 엄청난 이가 있었다. 하나님! 그저 북쪽 유대광야에서 남쪽으로 유랑하며 내려온 베두인의 하나로만 깔보며 고압적인 자세로 아브라함을 대하던 아비멜렉이 하나님에게 혼쭐이 나고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사래를 건네준 이후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보이는 아브라함도 대단하려니와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또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그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이 태어나자 아브라함은 잔치를 베풀고 아비멜렉을 초대하였다. 아비멜렉과 비골은 또한번 놀람과 두려움으로 아브라함을 찾아갔다. 100세나 된 노구의 몸으로 자녀를 맞았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놓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이 두렵고, 아브라함에게 이제 아들이 태어 났으니, 그 후손과 자기의 후손들이 공생하며 살아갈 그 땅과 그 주변의 모든 지역의 미래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만나자자마 아브라함의 후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제부터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이 그 땅과 주변 지역에 미칠 힘과 영향력을 인정하고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과 자기의 땅에 대한 안전을 확증을 받기 원했다. 왕이 말이다. 왕이 일개 개인에게 말이다.
비록 왕이라고 불리는 아비멜렉이지만, 창세기 20장 이후로 "갑"과 "을"의 관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브라함이 "갑"이고, 아비멜렉이 "을"이 된 셈이다. 그런데, "갑"인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갑"처럼 대하지 않았다. 원래 아브라함의 것이었고, 아브라함과 그 식솔들이 파놓은 우물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어떤 모양이 되었든 지금은 아비멜렉의 수중에 있는 그 우물을 다시 소유하면서 아비멜렉에게 상징적인 계약으로나마 계약을 세운 것이다. 우물 한개당 "암양 새끼 한마리"라는 것은 우물의 가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말도 안되는 계약이기는 하지만, 원래 그것이 아브라함의 것이었고, 아비멜렉의 종들이 그것을 강탈하였음에도 사실관계만을 확인시켜준 채, 오히려 자기의 암양을 줌으로 분명한 사실 관계를 넘어서 확고한 계약을 이룬 것이다.
[브엘세바에 있는 아브라함의 우물. 성경에 우물이라고 번역된 대부분의 우물은 물을 저장해 놓는 물저장고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우물은 우리나라의 우물처럼 땅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그야 말로 우물이다.]
왜 아브라함은 그것을 그냥 돌려받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의 사람들과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아니었을까한다. 아브라함도 아비멜렉과 마찬가지로 그냥 가져왔다면 빼앗은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사실 관계를 모르고 둘러 둘러 들은 주변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빼았았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우물 한개당 암양 새끼 하나라는 이상한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왜 그런 이상한 계약을 하게 되었는가 궁금해 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과 우물을 두고 벌어졌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아비멜렉은 쿨한 사람으로, 아브라함은 대인배로 알려질 테니, 둘 모두가 상생한 셈이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이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었던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고 하나님께 예배하였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마스는 계속 이스라엘의 브엘세바에 로켓포를 쏘아대고, "하지마, 하지마!"하던 이스라엘이 호되게 공격하는 모양새이다. 마침 그랄을 중심으로 네게브 지역을 다스리던 아비멜렉이 당시에는 가자 즈음도 다스리거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둘 모두에게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서로 상생하는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아비멜렉. 그는 네게브의 맹주였다. 브엘쉐바 아랫쪽 남쪽 유대광야 전체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의 명성은 그 주변의 모든 지역의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다. 블레셋 평야의 동쪽 끝자락인 비옥한 그랄에 왕노릇하면서 풍요로운 블레셋 평야가 주는 경제적인 여유로움과 그 풍요로움으로 사들인 아나톨리아 출신의 군대장관 비골은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나라의 경제적인 넉넉함과 그 나라의 군사적인 우위를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아비멜렉에게도 두려운 존재가 있었다.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왕도 아니다. 그런데, 그의 가솔들은 왠만한 군사들을 뺨치는 놀라운 전쟁수행능력이 있었다 (창 14). 게다가 그에게는 그 뒤를 봐주는 엄청난 이가 있었다. 하나님! 그저 북쪽 유대광야에서 남쪽으로 유랑하며 내려온 베두인의 하나로만 깔보며 고압적인 자세로 아브라함을 대하던 아비멜렉이 하나님에게 혼쭐이 나고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사래를 건네준 이후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보이는 아브라함도 대단하려니와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또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그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이 태어나자 아브라함은 잔치를 베풀고 아비멜렉을 초대하였다. 아비멜렉과 비골은 또한번 놀람과 두려움으로 아브라함을 찾아갔다. 100세나 된 노구의 몸으로 자녀를 맞았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놓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이 두렵고, 아브라함에게 이제 아들이 태어 났으니, 그 후손과 자기의 후손들이 공생하며 살아갈 그 땅과 그 주변의 모든 지역의 미래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만나자자마 아브라함의 후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제부터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이 그 땅과 주변 지역에 미칠 힘과 영향력을 인정하고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과 자기의 땅에 대한 안전을 확증을 받기 원했다. 왕이 말이다. 왕이 일개 개인에게 말이다.
비록 왕이라고 불리는 아비멜렉이지만, 창세기 20장 이후로 "갑"과 "을"의 관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브라함이 "갑"이고, 아비멜렉이 "을"이 된 셈이다. 그런데, "갑"인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갑"처럼 대하지 않았다. 원래 아브라함의 것이었고, 아브라함과 그 식솔들이 파놓은 우물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어떤 모양이 되었든 지금은 아비멜렉의 수중에 있는 그 우물을 다시 소유하면서 아비멜렉에게 상징적인 계약으로나마 계약을 세운 것이다. 우물 한개당 "암양 새끼 한마리"라는 것은 우물의 가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말도 안되는 계약이기는 하지만, 원래 그것이 아브라함의 것이었고, 아비멜렉의 종들이 그것을 강탈하였음에도 사실관계만을 확인시켜준 채, 오히려 자기의 암양을 줌으로 분명한 사실 관계를 넘어서 확고한 계약을 이룬 것이다.
[브엘세바에 있는 아브라함의 우물. 성경에 우물이라고 번역된 대부분의 우물은 물을 저장해 놓는 물저장고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우물은 우리나라의 우물처럼 땅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그야 말로 우물이다.]
왜 아브라함은 그것을 그냥 돌려받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의 사람들과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아니었을까한다. 아브라함도 아비멜렉과 마찬가지로 그냥 가져왔다면 빼앗은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사실 관계를 모르고 둘러 둘러 들은 주변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빼았았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우물 한개당 암양 새끼 하나라는 이상한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왜 그런 이상한 계약을 하게 되었는가 궁금해 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과 우물을 두고 벌어졌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아비멜렉은 쿨한 사람으로, 아브라함은 대인배로 알려질 테니, 둘 모두가 상생한 셈이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이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었던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고 하나님께 예배하였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마스는 계속 이스라엘의 브엘세바에 로켓포를 쏘아대고, "하지마, 하지마!"하던 이스라엘이 호되게 공격하는 모양새이다. 마침 그랄을 중심으로 네게브 지역을 다스리던 아비멜렉이 당시에는 가자 즈음도 다스리거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둘 모두에게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서로 상생하는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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