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세계 13년 3월]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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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6
디아스포라 διασπορά는 원래 자기가 살던 땅에서 떠나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 단어를 제일 처음 사용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 사는 유대인들(약 570만명. 2009년 기준)은 그 출신에 따라서 아쉬케나짐 אשכנזים, 스파라딤 ספרדים, 미즈라힘 מזרחים으로 나누는데, 중앙 유럽과 동부 유럽의 디아스포라 출신들을 아쉬케나짐, 서부 유럽지역의 디아스포라 출신들을 스파라딤, 그리고 중동 지역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미즈라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의 비율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아쉬케나짐들로 약 300만명이고, 나머지 270만명은 스파라딤과 미즈라힘들이지요. 이 유대인들 간에는 단지 출신지의 구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도 조금씩 다릅니다. 많이 다르다고 한다면, 많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이들은 한 회당에서 섞여서 예배드리지도 않습니다. 각각의 회당이 따로 있어요. 마치 요즈음 한 동네에 감리교회, 성결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가 각각 있듯이 유대인의 동네마다 몇 개의 회당이 있습니다. 간혹 TV에서 아쉬케나짐 랍비와 스파라딤 랍비들이 율법 해석을 놓고 벌이는 설전을 볼 수도 있는데, 이와 같은 율법이해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서로 오래 동안 떨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생겨난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남쪽 유다 왕국의 멸망 이후 바벨론의 각 지역과 전 세계로 흩어져 나간 유대인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사람들을 바벨론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고, 디아스포라의 시작을 아브라함-이삭-야곱의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 밖에 거주했던 일체의 삶을 디아스포라의 삶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컸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안디옥이었습니다. 이들은 단지 규모만으로 큰 것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가운데에서도 유대교의 신학과 성서해석의 방법들을 만드는 중심지들이었습니다. 이 두 지역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역은 바대, 메데, 엘람, 메소보다미아, 갑바도기아, 본도, 브루기아, 밤빌리아, 구레네, 리비아,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의 디아스포라 (행 2:9-11)입니다. 그런데 혼동하지 말아야할 것은 디아스포라에 사는 사람들이 유대(Judea) 지역에 돌아오지 못한 (타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주로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바빌론 포로기와 곧바로 연결해서 강제로 이주당해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빌론 포로기가 끝나고 유다 땅으로 돌아갈 자유가 주어졌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디아스포라로 있던 지역에 남아서 그냥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자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그 이전 시대의 유대인들 역시 이미 큰 규모의 디아스포라를 이룬 지역에서 든든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유대지역으로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영토 안에서 충분히 유대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는데에도 가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다고 디아스포라에 거주하던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성전이 있는 유대지역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하는 세 개의 명절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예루살렘을 순례해야했으니까요. 디아스포라에서 유대인들이 순례를 위해서 예루살렘을 찾으면 제사야 한 곳, 성전에서 드리지만, 안식일이 되어서 회당에 갈 때면 각각의 디아스포라들의 회당을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마치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아쉬케나짐과 스파라딤, 미즈라힘이 서로 다른 회당을 가듯이 말이지요. 신약성경에서도 사도행전 6장에서 스데반과 논쟁을 벌이던 유대인들을 보면 (9절),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각 회당에서 스데반의 반대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을 몰아세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디아스포라 중에서 구레네라는 곳은 지금의 리비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3-2세기의 프톨레미 시대의 기록에 보면, 구레네 지역에는 약 십만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하네요. 기원전 1세기 때에는 로마의 속주 가운데에서 북아프리카 지역의 중심지로 부상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 (Via Dolorosa)을 걸어가실 때에 로마 병사들이 잡아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끌고가게 한 사람입니다 (마 27:32; 막 15:21; 눅 23:26). 각각의 성경에서 단 한절로만 구레네 사람 시몬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시몬에 대해서 말하려고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창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구레네 사람이라고 하지만, 구레네에서 유월절 순례를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왔었는지, 아니면 그가 태생만 구레네이고 사는 것은 예루살렘 주변이나 유대 땅 어디에선가 살았던 것인지. 그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는지, 아니면 그 고난의 길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것인지. 성경에서는 이렇다할 단서가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누구인가?" 에 대해서는 설명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이 아니라, 로마 병사들에 의해서 억지로 끌고 갔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통과하셨던 그 길은 십자가만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특별한 길이 아니라, 시장통이었거든요. 예수님의 주변에서 예수님을 향해 돌을 던지고 소리치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던 사람, 예수님의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본 사람, 기적의 당사자, 그리고 제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갈 때에 그 누구도 채찍질하는 로마병사들을 말리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쓰러지셨을 때에 어느 누구도 쓰러지신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 주변에는 구레네 사람 시몬도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로마 병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시몬을 붙들어다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함께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메고 가기도 싫었고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을 지도 모르는 시몬이 알지도 못하는 예수라는 사람의 십자가를 아무런 감동과 슬픔없이 마지 못해 억지로끌고갔다고 흉보지는 마세요. 시몬 외에는 아무도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간 사람이 없었으니 말예요. 불과 몇일 전까지만 해도 "호산나!"를 외치며 열광하던 무리들은 다들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지고 예수님의 고난을 재미삼아 구경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은 죄다 도망갔는데,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끌고갔다는 것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요?
기대하지도 않았고 예상치도 못했던 단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시몬에게는 충격적인 만남이었고, "내가 십자가를 함께 져주고 있는 이 '예수'라는 인물이 누군가?"하는 의문과 함께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사람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소아시아 지방 여러곳으로 흩어질 때에 구레네 사람 몇몇이 안디옥에 이르러 복음을 증거한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전해 지는데, 학자들중에 일부는 그 구레네 사람들 중에 시몬이 있지 않았는가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 11:20). 뿐만아니라, 그의 두 아들 중 루포는 로마의 초대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중요한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구레네 사람 시몬의 부인이자 루포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지요. 또 다른 아들은 알렉산더에 대해서는 성경에 제대로 나와 있지 않지만, 1941년부터 시작된 히브리대학교 고고학 발굴단에 의해서 그가 예루살렘에서 사역했다는 간접적인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실로암 연못 남쪽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의 오래된 무덤들을 발굴하던 중, "시몬의 아들 알렉산더"라는 1세기의 뼈상자 (Ossuary)가 발견된 것이지요. 그 상자에는 주인인 알렉산더가 구레네 사람 (קרנית)이라고 그 출신지까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은 이 뼈상자의 주인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 알렉산더라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삼월이 되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서 날아 옵니다. 엄청난 수의 기독교인들은 그 즈음에 부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지요. 온 이스라엘 땅의 숙박시설들은 이미 예약이 끝났고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을 채울겁니다. 그 때에 적어도 기독교인들이라면 구레네 사람 시몬도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시몬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내 신앙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선뜻 십자가를 지고 갈 용기가 없다면 억지로라도 지고가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장한 생각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남쪽 유다 왕국의 멸망 이후 바벨론의 각 지역과 전 세계로 흩어져 나간 유대인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사람들을 바벨론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고, 디아스포라의 시작을 아브라함-이삭-야곱의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 밖에 거주했던 일체의 삶을 디아스포라의 삶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컸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안디옥이었습니다. 이들은 단지 규모만으로 큰 것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가운데에서도 유대교의 신학과 성서해석의 방법들을 만드는 중심지들이었습니다. 이 두 지역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역은 바대, 메데, 엘람, 메소보다미아, 갑바도기아, 본도, 브루기아, 밤빌리아, 구레네, 리비아,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의 디아스포라 (행 2:9-11)입니다. 그런데 혼동하지 말아야할 것은 디아스포라에 사는 사람들이 유대(Judea) 지역에 돌아오지 못한 (타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주로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바빌론 포로기와 곧바로 연결해서 강제로 이주당해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빌론 포로기가 끝나고 유다 땅으로 돌아갈 자유가 주어졌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디아스포라로 있던 지역에 남아서 그냥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자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그 이전 시대의 유대인들 역시 이미 큰 규모의 디아스포라를 이룬 지역에서 든든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유대지역으로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영토 안에서 충분히 유대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는데에도 가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다고 디아스포라에 거주하던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성전이 있는 유대지역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하는 세 개의 명절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예루살렘을 순례해야했으니까요. 디아스포라에서 유대인들이 순례를 위해서 예루살렘을 찾으면 제사야 한 곳, 성전에서 드리지만, 안식일이 되어서 회당에 갈 때면 각각의 디아스포라들의 회당을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마치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아쉬케나짐과 스파라딤, 미즈라힘이 서로 다른 회당을 가듯이 말이지요. 신약성경에서도 사도행전 6장에서 스데반과 논쟁을 벌이던 유대인들을 보면 (9절),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각 회당에서 스데반의 반대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을 몰아세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디아스포라 중에서 구레네라는 곳은 지금의 리비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3-2세기의 프톨레미 시대의 기록에 보면, 구레네 지역에는 약 십만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하네요. 기원전 1세기 때에는 로마의 속주 가운데에서 북아프리카 지역의 중심지로 부상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 (Via Dolorosa)을 걸어가실 때에 로마 병사들이 잡아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끌고가게 한 사람입니다 (마 27:32; 막 15:21; 눅 23:26). 각각의 성경에서 단 한절로만 구레네 사람 시몬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시몬에 대해서 말하려고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창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구레네 사람이라고 하지만, 구레네에서 유월절 순례를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왔었는지, 아니면 그가 태생만 구레네이고 사는 것은 예루살렘 주변이나 유대 땅 어디에선가 살았던 것인지. 그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는지, 아니면 그 고난의 길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것인지. 성경에서는 이렇다할 단서가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누구인가?" 에 대해서는 설명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이 아니라, 로마 병사들에 의해서 억지로 끌고 갔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통과하셨던 그 길은 십자가만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특별한 길이 아니라, 시장통이었거든요. 예수님의 주변에서 예수님을 향해 돌을 던지고 소리치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던 사람, 예수님의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본 사람, 기적의 당사자, 그리고 제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갈 때에 그 누구도 채찍질하는 로마병사들을 말리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쓰러지셨을 때에 어느 누구도 쓰러지신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 주변에는 구레네 사람 시몬도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로마 병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시몬을 붙들어다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함께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메고 가기도 싫었고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을 지도 모르는 시몬이 알지도 못하는 예수라는 사람의 십자가를 아무런 감동과 슬픔없이 마지 못해 억지로끌고갔다고 흉보지는 마세요. 시몬 외에는 아무도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간 사람이 없었으니 말예요. 불과 몇일 전까지만 해도 "호산나!"를 외치며 열광하던 무리들은 다들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지고 예수님의 고난을 재미삼아 구경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은 죄다 도망갔는데,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끌고갔다는 것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요?
기대하지도 않았고 예상치도 못했던 단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시몬에게는 충격적인 만남이었고, "내가 십자가를 함께 져주고 있는 이 '예수'라는 인물이 누군가?"하는 의문과 함께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사람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소아시아 지방 여러곳으로 흩어질 때에 구레네 사람 몇몇이 안디옥에 이르러 복음을 증거한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전해 지는데, 학자들중에 일부는 그 구레네 사람들 중에 시몬이 있지 않았는가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 11:20). 뿐만아니라, 그의 두 아들 중 루포는 로마의 초대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중요한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구레네 사람 시몬의 부인이자 루포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지요. 또 다른 아들은 알렉산더에 대해서는 성경에 제대로 나와 있지 않지만, 1941년부터 시작된 히브리대학교 고고학 발굴단에 의해서 그가 예루살렘에서 사역했다는 간접적인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실로암 연못 남쪽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의 오래된 무덤들을 발굴하던 중, "시몬의 아들 알렉산더"라는 1세기의 뼈상자 (Ossuary)가 발견된 것이지요. 그 상자에는 주인인 알렉산더가 구레네 사람 (קרנית)이라고 그 출신지까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은 이 뼈상자의 주인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 알렉산더라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삼월이 되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서 날아 옵니다. 엄청난 수의 기독교인들은 그 즈음에 부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지요. 온 이스라엘 땅의 숙박시설들은 이미 예약이 끝났고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을 채울겁니다. 그 때에 적어도 기독교인들이라면 구레네 사람 시몬도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시몬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내 신앙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선뜻 십자가를 지고 갈 용기가 없다면 억지로라도 지고가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장한 생각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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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영문
- 2024-05-09 05:28:41
감동적인 글입니다. 억지로라도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가는 용기만이라도 가진다면 주님을 위해 쓰임받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다라는 마음을 주네요.
- 엄영문
- 2024-05-09 05:29:44
감동적인 글입니다. 억지로라도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가는 용기만이라도 가진다면 주님을 위해 쓰임받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다라는 마음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