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세계 13년 7/8월] 욥바의 도르가-복음을 전하는 방법, 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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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5
가끔씩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강단에서 목사님들께서 설교하시기를 이스라엘에는 거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정말 이스라엘에 거지가 없냐고 물어보십니다. 당황스러운 질문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이스라엘이 워낙에 떨어져 있는 동네이다보니 그 만큼 부정확한 이스라엘에 대한 정보들이 한국에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리고 또한가지 옳지 못한 정보는 이스라엘의 경제력이 우리나라의 경제력 보다 엄청나게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PPP(일인당 구매력지수)가 국가의 경제적인 수준을 나누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요, 우리나라의 PPP지수는 $32,100(2011년 기준)이고, 이스라엘은 $31,400(2011년 기준)입니다. 우리나라가 조금 앞선다고 보시는 것이 더 맞을 것같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빈곤계층(Numbers below the poverty line)의 분포도도 우리나라는 15%(2006년 기준)인데 비해서 이스라엘은 가족 빈곤율은 21%(2005년 기준), 개인 빈곤율은 25%(2005년 기준), 아이들의 빈곤율은 35%(2005년 기준)에 이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에 거지가 없다는 낭설은 어디로부터 출발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이 사는 이스라엘에 대한 막연한 환상때문에 만들어진 근거없는 소문이 돌고돌아 부정확한 정보들이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해요.
이스라엘에 빈곤 지수 아래에 위치한 빈곤층이 많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겁니다. 제가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분석할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 중에서 빈곤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그룹은 아마 하레딤(חרדים)이라고 불리는 정통파 유대 종교인 계층일 겁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교인 가운데에서 약 15%가 하레딤이라고들 말하는데요, 이들의 경제적인 상황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직업을 가지지 않고 성경의 율법과 선조들의 율법들을 공부하고 종교적인 생활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다보니 변변한 수입원이 없어요. 그래서 국가에서는 이들을 위해서 일인당 약 $300의 생활비를 보조해 줍니다. 보통 이들이 5-7명의 자녀들을 두기 때문에 한 가족 구성원의 수를 약 7-10명정도로 친다하여도 $2,000-$3,000은 턱없이 모자란 생활비입니다. 이 정도의 가족이라면 최소 $6,000-$8,000은 있어야 보험이라도 들면서 살 수 있거든요. 경제적인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들이 모여서 사는 메아 쉐아림(מאה שערים)이라는 동네는 매우 낙후되었고, 통곡의 벽 주변에는 구제(쯔다카 צדקה)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구제를 바라며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없고, 주는 사람들에게도 주는 이(Donator)가 가지는 거만함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구제라는 행위가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이예요.
유대인들의 쯔다카를 말할 때에 흔히들 오해하는 것은 쯔다카가 구약성경 시대의 십일조를 대치하는 개념이라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오늘날의 유대인들도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레딤들이 운영하는 과일가게에서는 파는 과일이나 채소도 아닌데 길가에 있는 박스에 따로 담아 놓은 과일과 채소들이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과 채소가 말이지요. 이 상자는 그 가게의 주인이 따로 떼어 놓은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회당에다가도 현금으로 수입의 십분의 일을 십입조로 봉헌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십일조라는 히브리어 마아세르(מַעֲשֵׂר)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고 있고, 또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십일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십일조의 목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의 하나인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이제 없기 때문입니다 (민 18). 하지만,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대로 따릅니다. 그렇게 거두어들여진 십일조는 회당에서 사용되어 지거나, 구제 기관에 전달되거나 회당의 구성원들의 결정과 동의로 사용처가 확정이 됩니다.
십일조의 용처 중에서 중요한 개념이 구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십일조가 단지 제사장과 레위인들, 그리고 성전과 제단에서 봉사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사용처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경제적인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돕는 것이었거든요 (신 14). 그래서 십일조처럼 소득이 1/10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의무를 다하는 유대인들은 지금도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제헌금을 하는 이들이 꽤 많은 듯합니다. 현대의 랍비들은 이 구제를 자기가 얻은 소득의 2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까지 만들어 놓았거든요.
성경에 구제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도르가' Δορκάς 입니다. 도르가는 욥바에 살았던 과부였습니다. 도르가의 경제적인 사정이 어느정도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대 기독교의 전통에서는 이 도르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옷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과부를 부요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혹시 이미 죽은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손 치더라도 (결혼 증서에 아내가 받을 몫을 특별하게 기록하지 않은 이상, 예수님 당시의 유대법에 의하면 남편의 재산을 과부가 물려받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자가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거나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여자들이 한벌의 옷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직물을 짜는데에만 꼬박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만든 직물로 옷을 만들어야했으니, 이미 만들어진 원단을 구입하여서 옷을 만들지 않는 이상 한달에 옷을 세벌이상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으로 남겨진 가족들이 생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만약 아들이 없어서 남편이 남겨둔 재산을 여자가 온전히 가지지 못하게 될 경우는 더 힘든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성서적인 의미에서 과부는 단지 남편이 죽은 여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이혼하였으나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여인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창 38). 그래서 성경에서는 십일조의 수혜자 중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과부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신 14:29). 그런데! 도움을 받고 살아야하는 과부 도르가가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욥바라는 곳이 그렇습니다. 욥바는 가자, 아쉬켈론, 가아사랴, 악고와 더불어 당시 유다를 대표하던 항구이고, 그 항구의 역사가 지금으로부터 3,500년이 넘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레바논의 목재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송하는 바닷길로 사용되었고, 오랜 역사를 가진 항구이다보니, 안드로메다 신화에 나오는 안드로메다 공주가 묶였던 바위가 있었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많은 외국인들과 어부들이 넘쳐났던 활기찬 도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이들도 많기 마련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욥바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과부들이 한땀 한땀 정성스레 옷을 만들어서 헐벗은 이들에게 옷을 입혀주는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욥바에는 도르가 뿐 아니라, 이렇게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앞장 섰던 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죽었을 때에 아마 도르가나 함께한 과부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많은 이들이 함께 슬퍼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다시 살아났을 때, 그 누구보다도 더 기뻐했던 이들 역시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많은 욥바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구제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오늘의 나는 어떤지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에 빈곤 지수 아래에 위치한 빈곤층이 많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겁니다. 제가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분석할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 중에서 빈곤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그룹은 아마 하레딤(חרדים)이라고 불리는 정통파 유대 종교인 계층일 겁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교인 가운데에서 약 15%가 하레딤이라고들 말하는데요, 이들의 경제적인 상황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직업을 가지지 않고 성경의 율법과 선조들의 율법들을 공부하고 종교적인 생활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다보니 변변한 수입원이 없어요. 그래서 국가에서는 이들을 위해서 일인당 약 $300의 생활비를 보조해 줍니다. 보통 이들이 5-7명의 자녀들을 두기 때문에 한 가족 구성원의 수를 약 7-10명정도로 친다하여도 $2,000-$3,000은 턱없이 모자란 생활비입니다. 이 정도의 가족이라면 최소 $6,000-$8,000은 있어야 보험이라도 들면서 살 수 있거든요. 경제적인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들이 모여서 사는 메아 쉐아림(מאה שערים)이라는 동네는 매우 낙후되었고, 통곡의 벽 주변에는 구제(쯔다카 צדקה)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구제를 바라며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없고, 주는 사람들에게도 주는 이(Donator)가 가지는 거만함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구제라는 행위가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이예요.
유대인들의 쯔다카를 말할 때에 흔히들 오해하는 것은 쯔다카가 구약성경 시대의 십일조를 대치하는 개념이라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오늘날의 유대인들도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레딤들이 운영하는 과일가게에서는 파는 과일이나 채소도 아닌데 길가에 있는 박스에 따로 담아 놓은 과일과 채소들이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과 채소가 말이지요. 이 상자는 그 가게의 주인이 따로 떼어 놓은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회당에다가도 현금으로 수입의 십분의 일을 십입조로 봉헌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십일조라는 히브리어 마아세르(מַעֲשֵׂר)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고 있고, 또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십일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십일조의 목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의 하나인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이제 없기 때문입니다 (민 18). 하지만,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대로 따릅니다. 그렇게 거두어들여진 십일조는 회당에서 사용되어 지거나, 구제 기관에 전달되거나 회당의 구성원들의 결정과 동의로 사용처가 확정이 됩니다.
십일조의 용처 중에서 중요한 개념이 구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십일조가 단지 제사장과 레위인들, 그리고 성전과 제단에서 봉사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사용처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경제적인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돕는 것이었거든요 (신 14). 그래서 십일조처럼 소득이 1/10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의무를 다하는 유대인들은 지금도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제헌금을 하는 이들이 꽤 많은 듯합니다. 현대의 랍비들은 이 구제를 자기가 얻은 소득의 2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까지 만들어 놓았거든요.
성경에 구제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도르가' Δορκάς 입니다. 도르가는 욥바에 살았던 과부였습니다. 도르가의 경제적인 사정이 어느정도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대 기독교의 전통에서는 이 도르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옷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과부를 부요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혹시 이미 죽은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손 치더라도 (결혼 증서에 아내가 받을 몫을 특별하게 기록하지 않은 이상, 예수님 당시의 유대법에 의하면 남편의 재산을 과부가 물려받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자가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거나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여자들이 한벌의 옷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직물을 짜는데에만 꼬박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만든 직물로 옷을 만들어야했으니, 이미 만들어진 원단을 구입하여서 옷을 만들지 않는 이상 한달에 옷을 세벌이상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으로 남겨진 가족들이 생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만약 아들이 없어서 남편이 남겨둔 재산을 여자가 온전히 가지지 못하게 될 경우는 더 힘든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성서적인 의미에서 과부는 단지 남편이 죽은 여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이혼하였으나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여인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창 38). 그래서 성경에서는 십일조의 수혜자 중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과부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신 14:29). 그런데! 도움을 받고 살아야하는 과부 도르가가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욥바라는 곳이 그렇습니다. 욥바는 가자, 아쉬켈론, 가아사랴, 악고와 더불어 당시 유다를 대표하던 항구이고, 그 항구의 역사가 지금으로부터 3,500년이 넘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레바논의 목재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송하는 바닷길로 사용되었고, 오랜 역사를 가진 항구이다보니, 안드로메다 신화에 나오는 안드로메다 공주가 묶였던 바위가 있었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많은 외국인들과 어부들이 넘쳐났던 활기찬 도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이들도 많기 마련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욥바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과부들이 한땀 한땀 정성스레 옷을 만들어서 헐벗은 이들에게 옷을 입혀주는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욥바에는 도르가 뿐 아니라, 이렇게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앞장 섰던 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죽었을 때에 아마 도르가나 함께한 과부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많은 이들이 함께 슬퍼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다시 살아났을 때, 그 누구보다도 더 기뻐했던 이들 역시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많은 욥바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구제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오늘의 나는 어떤지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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