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서신] 요단강에도 나룻터가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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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1
제가 수영을 못하잖아요. 군대에 갔다 오고 나서, 다 큰 녀석이 실내 수영장에서 인명구조원에게 구조되어서 나왔다고 하면, 아마도 제 수영 실력을 다들 대충 짐작할 겁니다. 쑥스럽지만 아직까지 그놈의 수영실력은 어째 '발전'이라는 것이 없네요. 그래서인지 물만 보면 그렇게 겁이 납니다. 올 여름 교회에서 길보아산 자락 아래의 하롯 샘 근처로 수양회를 가서 길보아산 자락에서 터져 나오는 커다란 샘에서 다들 즐거운 오후를 보냈는데, 저는 역시 물가에서 발만 첨벙거리다가 왔네요. 수양회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요단강 옆을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례나 발인 예배 때에 왜 꼭 찬송을 부르면 "요단강 건너가서 만나자."는 찬양을 부르냐는 거지요. 지금의 요단강을 본다면, 요단강 건너 하나님 나라가기란 누워 자며 숨쉬기인데 말이지요.
요단 골짜기에 풍부한 물을 대주는 요단강이 유명해진 이유를 들라면, 뭐니 뭐니 해도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 때문일 겁니다(막 1:9-11).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장소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리고 앞의 요단강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현재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 여리고 앞을 지나는 곳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장소로 들어가는 갈림길 안내 표지판을 보실 수가 있어요. 요르단 쪽에서는 그 장소로의 출입이 자유롭다고 들었는데(한 번도 가보질 못했으니, 아주 자유롭다고는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 못하네요.), 이스라엘 쪽에서는 여리고 앞쪽의 요단강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선인지라,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장소로의 출입이 일 년에 딱 한번 그리스 정교회에서 지키는 "예수님 세례 기념주일"에만 허용이 되지요. 그래서 아직까지 한 번도 그 장소에 가보질 못했습니다(이 글은 2011년에 예수님 세례터인 카스르 엘 야후드 Qasr el Yahud 가 개방되기 이전에 쓴 글입니다. 현재에는 이 장소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현재 카스르 엘 야후드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녀온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요르단 쪽 국경과 이스라엘 쪽 국경에 무장한 군인들이 강을 따라 쭉 서 있고, 탱크들이 그 옆에 있어서 매우 삼엄했다고들 하네요.
대부분 성지순례 오신 분들이 방문하는 갈릴리 호수 근처의 요단강 세례 터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가 아니라, 현재는 국경선이 된 요단강 세례터로의 출입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갈릴리 호수 남단의 남쪽 요단강이 시작하는 부분에 만들어 놓은 '오늘날의 요단강 세례장소'예요. 가끔씩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이미 세례를 받고서도 이곳에 와서 다시 한 번 세례를 받고 싶어서 목사님을 조르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답니다. 꼭 이런 데에 오면, '이곳이 바로(!) 그곳인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한둘 있어서, "기념하는 장소"라고 하면, 그냥 쌩해져서 "그럼, 그냥 빨리 갑시다!" 하면서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이 기념 세례터는 옛 요단강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실망스러운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나마 벳샨 국경을 통해서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왕래한다면, 꽤 수량이 되는 요단강을 보실 수 있지만, 여리고 앞 알렌비 국경을 통해서 요단강을 건너면 그야말로 폴짝 뛰면 건널 만한 도랑처럼 보이는 요단강을 만나게 됩니다. 예전 요단강의 모습은 이렇게 초라하지 않았는데요, 요단강의 좌우에 그동안 너무나 많은 농경지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저마다 요단강 물을 끌어다 쓰느라고 정작 사해 바다로 들어가는 하류에는 도랑과 같은 물만 흐르게 된 거지요. 그러나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의 요단강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사사기 10장에 길르앗 사람 사사 입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길르앗 지방이라고 하면, 현재는 요르단에 있는 얍복강 북쪽지역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 갓지파가 분할을 받은 땅이지요. 사사기 10장부터의 내용은 갓지파의 입다가 암몬 족속과 싸움을 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입다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입다의 실언으로 입다의 딸이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지는 불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왜 형도 아시지요? 입다가 하나님께 "하나님이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신다면, 내가 암몬 자손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먼저 나를 맞으러 나오는 그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번제물로 그를 드리겠습니다."(삿 11:30-31)라고 서원하는 바람에 입다의 딸이 번제물로 드려진 사건 말입니다.
이제 두달 후면, 사랑하는 딸을 번제물로 드려야 하는 슬픔에 찬 입다에게 에브라임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왜 전쟁에 나갈 때에 자기 지파들을 부르지 않았냐는 거지요. 그런데 그들의 말투에 입다가 기가 찼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입다는 전쟁을 나가기 전에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더러 전쟁에 참가하라고 종용을 했었거든요 (삿 12:2-3). 그런데 정작 오랄 때에 오지 않다가 전쟁이 다 끝나고 나니깐 이제 와서 전장 터로 달려와서는 전리품이 탐이나서 왜 부르지 않았냐고 꼬투리를 잡으니, 입다가 어찌 기분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에 대해서 별로 좋은 감정이 없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자기네들이 힘이 센 지파라고(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으니, 사사기에서도 계속되는 정복전쟁 속에서 여호수아가 속해 있던 에브라임 지파의 위상은 자못 컸습니다.) 자기들보다 약한 길르앗 사람들을 보고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친 자들이다." (삿 12:4) 라고 비아냥거리는 조롱을 대놓고 해대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입다를 위시한 길르앗 사람들이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그간 쌓였던 감정도 있었던 데다가, 민족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 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미운 털이 박혔는데, 입다에게 축하나 애도는 해주지 못 할망정 딴지를 거니 말입니다. 입다는 재빨리 에브라임 사람을 앞질러서 요단강의 나루를 차지했습니다. 그러고는 에브라임 사람 토벌에 들어가지요. 에브라임 사람들을 골라 내는 것은 매우 쉬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상도 사람들이 'ㅆ' 발음을 잘 못해서, "날씨가 살살~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에브라임 사람은 '쉬' 발음을 잘 못해서, 농작물의 '이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쉽볼렛'이라는 말을 '십볼렛'이라고 발음했기 때문이지요 ('쉽볼렛'이라는 말은 '이삭'이라는 의미도 있고, '물의 흐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에는 '쉽볼렛'의 의미가 '급류'라고 설명해 놓은 곳도 있어요.).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쉽볼렛'이라는 말을 해보라고 하고, '십볼렛'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을 전부다 나루터에서 죽였습니다. 죽은 에브라임 사람의 수만 42,000명이었으니(삿 12:6), 대단히 많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강 나루를 건너지 못해서 죽고 만 거지요.
그런데 요단강이 오늘날처럼 도랑이라면, 이 사람들이 왜 굳이 요단강 나루터로 도망을 했겠냐는 거지요.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 말이지요. 그냥 폴짝 뛰어서 넘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강 나룻터로 배를 타려고 모여들었던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요단강은 예전에 나루로 배를 건널 수밖에 없는 많은 수량의 물이 흘렀기 때문이지요. 요단강 서편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요단 동편에서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길은 요단강 나루 이외의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요르단의 마다바에 있는 교회 바닥의 모자이크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다바의 모자이크는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중동지역의 지도이자 성지순례 지도입니다. 1884년에 기독교 베두인 가족에 의해서 옛 6세기의 교회 바닥이 발견되었는데요, 바닥의 모자이크에는 예루살렘과 요르단의 어느 곳에 성서와 관련된 지역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지역을 당시의 사람들이 성지순례 했는지, 그리고 그 곳의 모양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잘 그려져 있어요.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요단강의 모습입니다. 마다바의 모자이크에 그려져 있는 요단강에는 배가 한 척 띄워져 있는데, 이 배는 노를 저어서 가는 배가 아닙니다. 모자이크를 보면, 강에 커다란 막대기 같은 것이 가로질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막대기는 배가 강을 건널 때에 아래쪽으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잡고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막대기예요. 그러니까 강의 물살이 급해서 그냥 노를 저어서 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강을 가로지를 막대기나, 굵은 동아줄 같은 것을 가로질러 두어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에 잡고 가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이런 방식으로 강을 건너는 배를 영상에 담은 것을 보았는데, 세계 어디를 가나 삶의 지혜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마다바의 모자이크를 보건데, 요단강은 수영을 하여 건너기에는 강의 폭도 지금 보다는 넓었을 뿐만 아니라, 물살도 급해서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수영도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수영해서 건너도 되지 않게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42,000명이 한결 같이 저처럼 물에만 들어가면 제 힘으로 못나오는 잠수의 귀재들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은 그냥 수영을 해서 건너면 되었을 텐데 말이지요. 그야 말로 강 폭도 숨 한번 꾹 참고 팔과 다리 몇번 물장구치면 건널 수 있을 것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요단강처럼 폭이 넓은 강, 사람의 키를 넘기는 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거지요. 물이라고 해 봤자 솟아 나오는 샘물이 전부인데, 이런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수영을 해보았을 리가 만무하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몇 그나마 수영이라는 것을 해볼 만한 강이라는 것이 있기 하지만, 그 수가 손에 꼽히고, 그것도 블레셋 평야나 샤론 평야 쪽으로 가야만 수심과 강폭이 강이라고 쳐줄 수 있을 만큼이 되는데, 이 지역은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던 땅인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곳에서 한가하게 수영 강습을 받아보았다고 미루어 짐작하면 좀 우스운 이야기지요.
이스라엘에 처음 와서 지금의 요단강을 보면서, 요단강을 우습게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 이 분들을 다시 구약성서의 시대로 모시고 가면, 같은 이야기를 하실 수가 있을까요? 형도 빨리 이스라엘에 와보시라니깐요.
요단 골짜기에 풍부한 물을 대주는 요단강이 유명해진 이유를 들라면, 뭐니 뭐니 해도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 때문일 겁니다(막 1:9-11).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장소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리고 앞의 요단강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현재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 여리고 앞을 지나는 곳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장소로 들어가는 갈림길 안내 표지판을 보실 수가 있어요. 요르단 쪽에서는 그 장소로의 출입이 자유롭다고 들었는데(한 번도 가보질 못했으니, 아주 자유롭다고는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 못하네요.), 이스라엘 쪽에서는 여리고 앞쪽의 요단강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선인지라,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장소로의 출입이 일 년에 딱 한번 그리스 정교회에서 지키는 "예수님 세례 기념주일"에만 허용이 되지요. 그래서 아직까지 한 번도 그 장소에 가보질 못했습니다(이 글은 2011년에 예수님 세례터인 카스르 엘 야후드 Qasr el Yahud 가 개방되기 이전에 쓴 글입니다. 현재에는 이 장소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현재 카스르 엘 야후드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녀온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요르단 쪽 국경과 이스라엘 쪽 국경에 무장한 군인들이 강을 따라 쭉 서 있고, 탱크들이 그 옆에 있어서 매우 삼엄했다고들 하네요.
대부분 성지순례 오신 분들이 방문하는 갈릴리 호수 근처의 요단강 세례 터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가 아니라, 현재는 국경선이 된 요단강 세례터로의 출입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갈릴리 호수 남단의 남쪽 요단강이 시작하는 부분에 만들어 놓은 '오늘날의 요단강 세례장소'예요. 가끔씩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이미 세례를 받고서도 이곳에 와서 다시 한 번 세례를 받고 싶어서 목사님을 조르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답니다. 꼭 이런 데에 오면, '이곳이 바로(!) 그곳인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한둘 있어서, "기념하는 장소"라고 하면, 그냥 쌩해져서 "그럼, 그냥 빨리 갑시다!" 하면서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이 기념 세례터는 옛 요단강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실망스러운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나마 벳샨 국경을 통해서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왕래한다면, 꽤 수량이 되는 요단강을 보실 수 있지만, 여리고 앞 알렌비 국경을 통해서 요단강을 건너면 그야말로 폴짝 뛰면 건널 만한 도랑처럼 보이는 요단강을 만나게 됩니다. 예전 요단강의 모습은 이렇게 초라하지 않았는데요, 요단강의 좌우에 그동안 너무나 많은 농경지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저마다 요단강 물을 끌어다 쓰느라고 정작 사해 바다로 들어가는 하류에는 도랑과 같은 물만 흐르게 된 거지요. 그러나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의 요단강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사사기 10장에 길르앗 사람 사사 입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길르앗 지방이라고 하면, 현재는 요르단에 있는 얍복강 북쪽지역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 갓지파가 분할을 받은 땅이지요. 사사기 10장부터의 내용은 갓지파의 입다가 암몬 족속과 싸움을 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입다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입다의 실언으로 입다의 딸이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지는 불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왜 형도 아시지요? 입다가 하나님께 "하나님이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신다면, 내가 암몬 자손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먼저 나를 맞으러 나오는 그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번제물로 그를 드리겠습니다."(삿 11:30-31)라고 서원하는 바람에 입다의 딸이 번제물로 드려진 사건 말입니다.
이제 두달 후면, 사랑하는 딸을 번제물로 드려야 하는 슬픔에 찬 입다에게 에브라임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왜 전쟁에 나갈 때에 자기 지파들을 부르지 않았냐는 거지요. 그런데 그들의 말투에 입다가 기가 찼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입다는 전쟁을 나가기 전에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더러 전쟁에 참가하라고 종용을 했었거든요 (삿 12:2-3). 그런데 정작 오랄 때에 오지 않다가 전쟁이 다 끝나고 나니깐 이제 와서 전장 터로 달려와서는 전리품이 탐이나서 왜 부르지 않았냐고 꼬투리를 잡으니, 입다가 어찌 기분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에 대해서 별로 좋은 감정이 없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자기네들이 힘이 센 지파라고(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으니, 사사기에서도 계속되는 정복전쟁 속에서 여호수아가 속해 있던 에브라임 지파의 위상은 자못 컸습니다.) 자기들보다 약한 길르앗 사람들을 보고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친 자들이다." (삿 12:4) 라고 비아냥거리는 조롱을 대놓고 해대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입다를 위시한 길르앗 사람들이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그간 쌓였던 감정도 있었던 데다가, 민족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 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미운 털이 박혔는데, 입다에게 축하나 애도는 해주지 못 할망정 딴지를 거니 말입니다. 입다는 재빨리 에브라임 사람을 앞질러서 요단강의 나루를 차지했습니다. 그러고는 에브라임 사람 토벌에 들어가지요. 에브라임 사람들을 골라 내는 것은 매우 쉬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상도 사람들이 'ㅆ' 발음을 잘 못해서, "날씨가 살살~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에브라임 사람은 '쉬' 발음을 잘 못해서, 농작물의 '이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쉽볼렛'이라는 말을 '십볼렛'이라고 발음했기 때문이지요 ('쉽볼렛'이라는 말은 '이삭'이라는 의미도 있고, '물의 흐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에는 '쉽볼렛'의 의미가 '급류'라고 설명해 놓은 곳도 있어요.).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쉽볼렛'이라는 말을 해보라고 하고, '십볼렛'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을 전부다 나루터에서 죽였습니다. 죽은 에브라임 사람의 수만 42,000명이었으니(삿 12:6), 대단히 많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강 나루를 건너지 못해서 죽고 만 거지요.
그런데 요단강이 오늘날처럼 도랑이라면, 이 사람들이 왜 굳이 요단강 나루터로 도망을 했겠냐는 거지요.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 말이지요. 그냥 폴짝 뛰어서 넘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강 나룻터로 배를 타려고 모여들었던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요단강은 예전에 나루로 배를 건널 수밖에 없는 많은 수량의 물이 흘렀기 때문이지요. 요단강 서편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요단 동편에서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길은 요단강 나루 이외의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요르단의 마다바에 있는 교회 바닥의 모자이크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다바의 모자이크는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중동지역의 지도이자 성지순례 지도입니다. 1884년에 기독교 베두인 가족에 의해서 옛 6세기의 교회 바닥이 발견되었는데요, 바닥의 모자이크에는 예루살렘과 요르단의 어느 곳에 성서와 관련된 지역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지역을 당시의 사람들이 성지순례 했는지, 그리고 그 곳의 모양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잘 그려져 있어요.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요단강의 모습입니다. 마다바의 모자이크에 그려져 있는 요단강에는 배가 한 척 띄워져 있는데, 이 배는 노를 저어서 가는 배가 아닙니다. 모자이크를 보면, 강에 커다란 막대기 같은 것이 가로질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막대기는 배가 강을 건널 때에 아래쪽으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잡고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막대기예요. 그러니까 강의 물살이 급해서 그냥 노를 저어서 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강을 가로지를 막대기나, 굵은 동아줄 같은 것을 가로질러 두어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에 잡고 가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이런 방식으로 강을 건너는 배를 영상에 담은 것을 보았는데, 세계 어디를 가나 삶의 지혜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마다바의 모자이크를 보건데, 요단강은 수영을 하여 건너기에는 강의 폭도 지금 보다는 넓었을 뿐만 아니라, 물살도 급해서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수영도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수영해서 건너도 되지 않게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42,000명이 한결 같이 저처럼 물에만 들어가면 제 힘으로 못나오는 잠수의 귀재들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은 그냥 수영을 해서 건너면 되었을 텐데 말이지요. 그야 말로 강 폭도 숨 한번 꾹 참고 팔과 다리 몇번 물장구치면 건널 수 있을 것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요단강처럼 폭이 넓은 강, 사람의 키를 넘기는 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거지요. 물이라고 해 봤자 솟아 나오는 샘물이 전부인데, 이런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수영을 해보았을 리가 만무하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몇 그나마 수영이라는 것을 해볼 만한 강이라는 것이 있기 하지만, 그 수가 손에 꼽히고, 그것도 블레셋 평야나 샤론 평야 쪽으로 가야만 수심과 강폭이 강이라고 쳐줄 수 있을 만큼이 되는데, 이 지역은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던 땅인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곳에서 한가하게 수영 강습을 받아보았다고 미루어 짐작하면 좀 우스운 이야기지요.
이스라엘에 처음 와서 지금의 요단강을 보면서, 요단강을 우습게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 이 분들을 다시 구약성서의 시대로 모시고 가면, 같은 이야기를 하실 수가 있을까요? 형도 빨리 이스라엘에 와보시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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