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역사는 숭고합니다. 그러나 그 유고한 역사에 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의 역사를 증명해 줄만한 증거들은 턱없이 모자랍니다. 1947년 이전까지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오래된 성서의 사본은 10세기 초반에 티베리아스에서 기록된 알렙포 사본이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땅 티베리아스에서 기록되었지만, 시리아의 알렙포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보관되었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 알렙포 사본이지요. 그런데, 이 사본은 1947년 시리아 지역의 반 유대주의자들의 폭동에 의해서 화재로 일부가 손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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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포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기는 하지만, 이 즈음에 사해 바다 북쪽 해안가에 있는 쿰란이라는 지역의 11개의 동굴들에서 성경이 기록된 두루마리들과 파피루스들이 대거로 출토되는데, 이 두루마리들은 성경의 역사를 알렙포 사본보다 1,000여년 앞당겼습니다.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성경이 다 발견된 쿰란의 두루마리들은 기원전 2세기를 전후해서 기록된 것들이었기 때문이지요.

모세가 대략 기원전 13세기에 처음으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다고 한다면, 알레포 사본은 모세의 시대와 대략 2,300년의 시간적인 간극이 있었지만, 쿰란에서 발견된 사본들 덕분에 모세와의 시간 차가 1,000여년으로 좁혀진 것입니다. 쿰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들을 근거로 학자들 사이에는 성경의 기록 역사를 대략 기원전 13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사이로 보고 치열한 논쟁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성경 자체에 근거를 두는 학자들은 성경 기록의 역사를 기원전 13세기나 그 바로 직후를, 좀 더 비평적인 학자들은 기원전 5세기부터 3세기 사이가 성경이 기록된 시기라고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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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히브리대학교 가핀켈(Garfinkel) 교수가 다윗과 골리앗의 전장(삼상 17)이었던 엘라 골짜기의 한 언덕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도시는 수 세기에 걸쳐서 마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텔”(Tel)이라고 불리는 작은 인공 언덕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언덕의 도시는 아주 독특하게 단 한 시대에만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고, 곧 버려졌습니다. 텔이 아닌 것이지요. 그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연구하면서 알게된 것은 그 마을이 있었던 시기가 기원전 11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중반(1050-970BCE: 성경에서 사울-다윗의 시대)으로 아마 삼상 17:52에 나오는 “사아라임”(뜻. 두 개의 문)일 것이라는 것이예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4미터 두께의 성벽의 길이가 약 700미터에 달하고, 5톤 무게의 거석이 도시 성벽을 이루는 마름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전쟁을 대비한 전진 기지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10킬로미터 떨어져 블레셋의 도시이자 골리앗의 도시인 가드가 있으니 말이지요. 아마 골리앗의 군대를 맞선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의 군대가 진을 꾸렸다면, 바로 이 곳이 아니었을까요?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이 이 도시의 발굴 이야기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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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를 발굴하던 중, 도시의 성문 주변에서 가로 세로 약 15센티미터인 깨어진 토기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자랑스럽게도 이 토기를 발견한 사람이 히브리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는 한국인 학생입니다. 이 토기가 우리가 읽는 성경 본문의 역사를 뒤바꾸어 놓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발견 된 이 토기의 글자를 좀 더 명확하게 구성한 다음 롤스톤(Rollston)과 쀼에쉬(Puech)와 같은 고대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분석했습니다. 이 토기에 기록된 글자는 기원전 10세기의 것이며, 기록된 고대 알파벳으로 기록된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을(를)] 하지말라. 그리고 [….을(를)] 섬기라
2. 노예와 과부를 재판하라 고아 (*-*)를 재판하라
3. *와 나그네를*. 어린 아기를 위해 변호하라. 가난한 사람과 (**-**)를 변호하라.
4. **과부**. 왕의 손에서 [구제 받아 마땅한 사람들을] 구제하라.
5. 가난한 사람[과] 노예를 보호하라. 나그네을 도우라.

신명기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과부, 고아, 나그네에 대한 공정한 재판(신 10:17-19)과 노예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고자하는 법령들(신 16:10-15)의 원형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기록 시기가 위에서 말한대로 11-10세기로 생각되니, 현재까지 성서 학자들이 말하는 신명기의 기록 시기보다 신명기가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의 거룩한 말씀의 역사가 적게는 300년, 길게는 800년 끌어 올리는 셈이 된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증명할 수 없었던 성경 본문의 역사를 증거하는 돌판을 보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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