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혼인잔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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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6
저도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교회에서 간증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신앙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히 어떤 시험과 난관 속에서도 "만나 주셨던" 주님 때문에 그 분을 부인하거나 떠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초자연적인 기적을 경험했던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늘 하나님께 불평했고,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기적을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이 결국은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주님을 저주했으니 말입니다.
나사렛으로부터 가나는 현재의 도로를 따라 걸으면 대략 10km정도가 됩니다. 옛 길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손 치더라도, 대략 3시간이면 사람의 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마을이며, 나귀를 탄다면, 한시간이면 충분한 길입니다. 그 가나 마을에 결혼 잔치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화요일(셋째날)에 결혼식 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내도 되어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1)라고 창조 셋째날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데요. 셋째날에는 하나님께서 두번이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만족하셨고, 또 여기에서 여섯번이나 사용된 히브리어 어근 זר״ע 가 가진 뜻 (한글 직역으로는 "씨" 또는 "씨뿌리다")이 자녀의 생산과 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기적에 나오는 결혼 잔치의 기적이 셋째날에 일어났는지, 또 누구의 결혼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리아가 열심히 도와주었던 것으로보아서 예수님의 친척, 또는 예수님의 가정과 가까운 가정의 결혼식이었던 것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결혼식에 제대로된 음식을 내어놓지 않으면 뒷소리가 무성한데, 예수님의 당시는 더했습니다. 대략 일주일정도 벌어지는 결혼식 잔치에는 먼 곳에 사는 친척으로부터 동네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찾아옵니다. 이 결혼식 잔치의 절정은 6일째 되는 저녁이예요. 이 때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때이고, 진짜 혼인예식을 하게 되는데요. 혼인식하는 날이나, 결혼식 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식이었습니다. 음식이 떨어지는 것은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중동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가장과 가문의 수치입니다.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에게 "당신들을 더 이상 섬길 수 없으니, 이제 돌아가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지요. 대단한 결례입니다. 그런데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이 예수님께서 가셨던 그 결혼 잔치에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음식과 함께 마시던 포도주가 떨어진 겁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음료였던 포도주가 말이지요. 그 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포도주가 아니라, 최고의 포도주로 말입니다. 결혼 잔치를 관리하는 연회장이 깜짝 놀랐습니다. 급하게 어딘서인가 구해왔을 포도주의 맛을 기대할 바도 아니었을 뿐 더러, 대개는 점점 갈 수록 질이 낮은 포도주를 내오기 마련인데, 막상 내 온 포도주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 만치 질이 좋았으니 말입니다.
교회에서 간혹 간증을 듣다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몇 년 전에, 또는 십 수년 전에 예수님을 만났고, 그 예수님이 자기를 바꾸어 신앙생활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바뀌어진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현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과거"를 이야기할 따름입니다. 많은 이들의 기도 제목도 "첫사랑을 회복하게 해주세요."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과거에는 그렇게 신앙도 좋았고, 열정도 있었고, 나름대로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이 최고의 포도주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혀가 미각을 조금씩 잃어갈 때즈음부터 점점 질낮은 포도주를 내어 놓기 시작하듯, 신앙도 조금씩 매너리즘에 빠져들어가서는 조금씩 참 맛을 잃어가고 있고, 마시는 사람도 내 놓는 사람도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가요? 게다가 지금 자신이 예수님의 복음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러고보면, 내가 해야할 진정한 간증은 "과거"에 만난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만난 예수님이 바꾸어 놓은 "지금"의 삶입니다. 물과 같았던 내 삶을 바꾸셔서 지금 내 인생이 최고급의 포도주로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포도주, 내 삶을 한번 맛보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간증이 되어야합니다.
나사렛으로부터 가나는 현재의 도로를 따라 걸으면 대략 10km정도가 됩니다. 옛 길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손 치더라도, 대략 3시간이면 사람의 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마을이며, 나귀를 탄다면, 한시간이면 충분한 길입니다. 그 가나 마을에 결혼 잔치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화요일(셋째날)에 결혼식 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내도 되어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1)라고 창조 셋째날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데요. 셋째날에는 하나님께서 두번이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만족하셨고, 또 여기에서 여섯번이나 사용된 히브리어 어근 זר״ע 가 가진 뜻 (한글 직역으로는 "씨" 또는 "씨뿌리다")이 자녀의 생산과 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기적에 나오는 결혼 잔치의 기적이 셋째날에 일어났는지, 또 누구의 결혼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리아가 열심히 도와주었던 것으로보아서 예수님의 친척, 또는 예수님의 가정과 가까운 가정의 결혼식이었던 것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결혼식에 제대로된 음식을 내어놓지 않으면 뒷소리가 무성한데, 예수님의 당시는 더했습니다. 대략 일주일정도 벌어지는 결혼식 잔치에는 먼 곳에 사는 친척으로부터 동네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찾아옵니다. 이 결혼식 잔치의 절정은 6일째 되는 저녁이예요. 이 때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때이고, 진짜 혼인예식을 하게 되는데요. 혼인식하는 날이나, 결혼식 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식이었습니다. 음식이 떨어지는 것은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중동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가장과 가문의 수치입니다.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에게 "당신들을 더 이상 섬길 수 없으니, 이제 돌아가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지요. 대단한 결례입니다. 그런데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이 예수님께서 가셨던 그 결혼 잔치에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음식과 함께 마시던 포도주가 떨어진 겁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음료였던 포도주가 말이지요. 그 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포도주가 아니라, 최고의 포도주로 말입니다. 결혼 잔치를 관리하는 연회장이 깜짝 놀랐습니다. 급하게 어딘서인가 구해왔을 포도주의 맛을 기대할 바도 아니었을 뿐 더러, 대개는 점점 갈 수록 질이 낮은 포도주를 내오기 마련인데, 막상 내 온 포도주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 만치 질이 좋았으니 말입니다.
교회에서 간혹 간증을 듣다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몇 년 전에, 또는 십 수년 전에 예수님을 만났고, 그 예수님이 자기를 바꾸어 신앙생활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바뀌어진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현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과거"를 이야기할 따름입니다. 많은 이들의 기도 제목도 "첫사랑을 회복하게 해주세요."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과거에는 그렇게 신앙도 좋았고, 열정도 있었고, 나름대로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이 최고의 포도주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혀가 미각을 조금씩 잃어갈 때즈음부터 점점 질낮은 포도주를 내어 놓기 시작하듯, 신앙도 조금씩 매너리즘에 빠져들어가서는 조금씩 참 맛을 잃어가고 있고, 마시는 사람도 내 놓는 사람도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가요? 게다가 지금 자신이 예수님의 복음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러고보면, 내가 해야할 진정한 간증은 "과거"에 만난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만난 예수님이 바꾸어 놓은 "지금"의 삶입니다. 물과 같았던 내 삶을 바꾸셔서 지금 내 인생이 최고급의 포도주로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포도주, 내 삶을 한번 맛보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간증이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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