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은 누구나 받고 싶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걸어가는 앞길을 지켜주시고, 잘되게 해주시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바램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걸어가는 그 길에 평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기복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백성들에게 그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민수기에서 말입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6:24-26)

유대인들은 “제사장의 축복”으로 알려진 민수기 6장이 이 구절을 안식일이나, 명절, 그리고 중요한 예식에서 빠뜨리지 않고 암송합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길 원하는 바램과 더불어, 이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렇게 해주시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르침 대로 살아가야 하며,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상이 “복을 주셔서 그를 지키시고, 얼굴을 비추어서 은혜를 베푸시고, 그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얼굴을 드셔서 평강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마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토끼를 기다리는 것[수주대토 守株待兎]이 복이 아니라, 그 복을 받을 만한 자격있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한다는 가르침은 지금 기독교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닌가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언제부터 민수기의 아름다운 하나님의 축복, 또는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을 기억하며 입술에서 되뇌었을까요? 1970년대 이전까지는 제사장의 축복을 비롯하여서,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제사장이 이끌었던 제의와 제의에서 불렀던 노래와 기도들이 “정말 모세와 아론의 성막과 솔로몬이 건설한 성전에서 행해졌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 그리고 중반에 이르는 시대에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 해당하는 나라들에서 고고학 발굴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고고학 발굴의 성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제의에 대한 지식들이 축적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성경의 제의와 유사한 메소포타미아의 제의들이 속속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바벨론의 제의의 모습과 이스라엘의 제의가 비교 연구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과거 유다의 멸망을 전후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의 사람들이 다시 유다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였다는 성경 이야기를 기초로, 둘 사이의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하는 자연스러운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유사점이 발견될 때마다, 바벨론의 것을 우위에 두고, 성경의 것은 바벨론 포로기(기원전 6세기)에 바벨론에서 영향을 받은 유다 사람들이 성경을 기록하면서 차용하였다는 주장이 마치 정설처럼 학자들 사이에 유행을 했더랬습니다. 출애굽 때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제의 율법들이 포로기에나 이르러 기록되었거나, 포로기 때에 경험한 바벨론의 제의 모습을 마치 이스라엘 고유의 것인양 빌어 와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윤색하였다는 투의 주장입니다. 이 주장에 근거한다면, 오경에 나오는 성막 제의는 성전 제의의 뿌리를 설명하기 위한 후대의 창조적인 기록이며, 역사적으로 실재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데에까지 이릅니다. 특별히 창세기부터 민수기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제사장 신학’에 근거한 하나님의 말씀은 거의 대부분이 솔로몬의 성전 시기에는 있지도 않았다고 믿는 이들도 있었고, 그런 주장들이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민수기 6장에 나오는 제사장의 축복 기도도 제사장 신학에 근거한 하나님의 말씀이니, 이 또한 포로기 이전에는 있지도 않았던 후대의 창작물이 된 셈입니다. 일종의 문화 사대주의 정신에 근거한 매우 서구 제국주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설명입니다. 사실 당시 고고학자들 역시 점령군처럼 현재의 중동 땅에 들어가 발굴을 했으니, 이런 해석들의 뒤에는 발굴물을 해석하는 이의 정신 세계가 반영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1975-76년에 걸쳐서 텔아비브 대학교의 고고학 발굴팀이 기원전 9-8세기에 잠시 사람들이 살았던 시나이 반도의 쿤틸렛 아즈루드(Kuntillet ‘Ajrud)에서 제사장의 축복 기도를 떠올리게하는 문구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포로기 이전에 이미 제사장의 축복 기도가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장들에 의해서 읊어졌으며, 또 일반 백성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1979년에 오트만 시대(1517-1917년 사이 현재 이스라엘 땅을 지배하였던 제국)에 무기 창고로 사용하던 고대의 무덤들 중의 하나에서 우연히 목걸이 장신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장신구들의 용도를 추측하면서, 아마 부적처럼 그것을 목걸이로 하고 다니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만든 장신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 무덤은 대략 650BCE를 전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가로 27mm 세로 97mm의 얇은 은판이 원통형으로 돌돌 말려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펴보니, 그 위에는 고대 히브리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비록 금속 제품의 특성상 일부가 부식이 되어서 사라지기는 하였지만, 남아 있는 글자들로 그 내용을 재구성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아주 잘 보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신구 중의 하나를 폈을 때, 성서학과 고고학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민수기 6:24-26에 적혀있는 바로 그 제사장의 축복 기도문이었거든요.



이 발견으로 오경에 나와있는 성전 제의와 관련된 일련의 규정과 체계들이 기원전 6세기 초반 또는 그 이후에 바벨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창조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기존의 주장에 큰 변화가 왔습니다. 학자들이 주장하던 포로기 이전, 그러니까 분열 왕국 시대였던 기원전 7세기부터 이미 이스라엘 땅에서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민수기에 나오는 축복의 기도를 했었고, 그 기도문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사람들이 그 기도문을 목걸이로 만들어서 목에 걸고 다니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니까요. 몇몇 글자들에 대해서는 읽는 방법에 대해서 서로 다른 독법을 제시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은목걸이에 새겨진 글이 제사장의 축복 기도문이라는 데에는 아직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왜 이리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박물관에서 고고학 유물들을 볼 때마다, 땅 속 어딘가 고대의 흙 속에 숨어있을 하나님의 흔적들이 세상의 빛을 볼 그 날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기다리게 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참조한 글들: Barkay, Gabriel et al. “The Amulets from Ketef Hinnom: A New Edition and Evaluation.”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334 (2004): 41-71. Wellhausen, Julius. 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Ancient Israel: With a reprint of the article Israel from the Encyclopaedia Britannica. Translated by Black, Sutherland, and Allan Menzies. New York: Meridian Books, 1957. (Originally published in German, 1883) Olitzky, Kerry M. (Rabbi), “The Priestly Benediction” from https://www.myjewishlearning.com/article/the-priestly-bened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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