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렙포 코덱스 Aleppo Codex
holinesscode
2019-09-28
요즈음은 ㅇㅇㅇ출판사에서 인쇄하여 출판한 성경들이 기독교서점의 매대 하나를 빼곡하게 채우고도 남지만, 과거에는 글자 하나 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기록해야했습니다. 1454년에 구텐베르크(Gutenberg)가 인쇄 기술로 성경책을 출판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성경의 보존은 형태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이 다릅니다. 가로로 긴 양피지, 또는 파피루스를 둘둘 말아서 보관하는 형태를 “두루마리”(Scroll)라고 하고, 현재의 책처럼 가죽이나 파피루스를 잘 펴서 가운데를 실로 꿰메는 형태를 “코덱스”(Codex)라고 합니다. 그럼 언제 이런 문서 보존 형태가 사용되었는지 물을 수 밖에 없는데요. 쉽게 생각하자면, 기원전과 기원후를 기점으로 기원전에는 두루마리 형태가 일반적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기원후에는 코덱스 형태의 문서 기록방식이 소개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원후 4세기가 되면, 코덱스 형태의 문서 보존 방식이 매우 일반적이 됩니다. 성경의 기록 형태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책의 기록 방식은 “인쇄”입니다. 책의 내용은 사람이 만들지만, 책은 인쇄기가 찍어내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필사자(서기관)가 손으로 일일이 한 글자 한 글자를 원본을 보면서 베껴 써야 했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복사하듯 옮겨 적는 방식을 “필사”라고 하고, 필사한 글을 “사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의 내용과 동일한 히브리어 성경 중에서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은 가장 오래된 성경은 “알렙포 코덱스”(Aleppo Codex)입니다. 이 사본은 시리아 땅의 알렙포에 있는 회당에서 보관되었다고 해서 알렙포 코덱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비록 최종적으로는 시리아의 알렙포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 공동체의 회당에서 보관하게 되었지만, 알렙포 코덱스가 기록된 곳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서쪽에 있는 티베리아스라는 곳입니다. 이 곳은 성전 멸망 이후,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와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이름난 랍비들이 이 도시에 이주해서 살았고, 그들이 가르치던 학교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탈무드”(Talmud)라고 들어보셨을 거예요. 탈무드라 불리는 책들에는 두 가지 기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해당하는 고대 바벨론 지역에서 집대성된 탈무드(바벨론 탈무드 Talmud Bavli, 대략 500CE)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땅에서 집대성된 탈무드(예루살렘 탈무드 Talmud Yerushalmi/이스라엘 탈무드 Talmud Eretz Yisrael, 대략 350CE)이지요. 이 탈무드들 중에서 ‘예루살렘 탈무드’ 또는 ‘이스라엘 탈무드’라고 불리는 탈무드가 바로 티베리아스에서 집대성되었습니다. 히브리어는 원래 모음이 없이 자음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읽기의 통일성을 만들기 위해서 히브리어 모음 음가 표기의 기준을 만들었거든요. 그 기준을 만든 학자들(랍비들)이 살던 곳이 바로 티베리아스 이기도 합니다. 알렙포 코덱스는 10세기(대략 930CE)에 아론 벤 모세 벤 아셀(Ahron ben Moshe ben Asher)이 필사한 것인데요. 이 코덱스가 만들어질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히브리어로 읽고, 쓰고, 대화하던 도시가 티베리아스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티베리아스에서 알렙포 코덱스가 기록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알렙포 코덱스가 매우 권위있는 사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티베리아스에서 기록된 이 사본은 필사자인 아론 벤 모세 벤 아셀이 죽은 후에 예루살렘으로 옮겨졌고, 다시 이집트를 거쳐, 시리아의 알렙포까지 가는 기나긴 여행을 했습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잉크가 벗겨져 나간 곳이나, 곰팡이 때문에 코덱스의 일부분이 홍조가 생기면서 잉크가 보랏빛으로 변색된 부분들이 있기도 했지만, 이 사본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가상했던지, 오래된 많은 사본들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사본 중의 하나가 가장 오래된 알렙포 코덱스입니다. 이렇게 1,000년 이상 잘 보관되던 알렙포 코덱스에게도 시련이 닥쳤습니다. 1947년에 반 유대주의가 시리아 지역에 확산이 되면서, 유대인들을 혐오하는 이들의 폭동이 알렙포에서 있었고, 이들이 알렙포 사본이 보관된 회당을 파괴하고 불을 질러 버린 거예요.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UN에서 팔레스타인 땅을 분할하여서 ‘이스라엘’이라는 신생국가의 설립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약을 한 후, 심상치 않은 중동의 정서를 읽은 시리아의 유대인들이 행여나 발생할 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비해서 일부의 성경 두루마리들과 코덱스들을 회당 밖으로 옮겼고, 폭동이 일어나자 미처 옮기지 못한 것들을 회당의 마루바닥에 숨겨 두기도 했습니다. 이 혼란 중에 알렙포 코덱스가 간신히 살아남기는 했지만, 대략 200쪽이 유실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가서, 전도서,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등의 부분은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비록 소실 되었으나, 남겨진 이 값진 알렙포 코덱스를 보존하기 위해 1958년에 시리아 사람들 몰래 이스라엘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1986년에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서는 이 사본을 최대한 복원하고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파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은 부분들과 일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남아 있는 부분들, 그리고 알렙포 공동체의 후손들이 회당을 빠져 나오면서 가지고 나왔던 것들을 기부받으면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미국으로 이주했던 이 공동체의 후손은 1981년까지 자기의 서랍장 속에 뜯겨져 나간 알렙포 코덱스의 일부를 보관해 오다가, 이 프로젝트를 알고 기부하기도 하였고, 출애굽기의 한 부분은 미국으로 이주한 알렙포 공동체 유대인의 지갑 속에 보관되다가 기증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학자들의 노력 끝에 2001년에 “케테르 예루샬라임”(Keter Yerushalaim)이라는 이름으로 알렙포 코덱스에 근거한 히브리어 성경이 히브리대학교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손 위에 올려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드라마틱한 배경이 그 뒤에 숨어 있는지 알게 된다면, 성경을 대하는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마주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어질 거예요.
우리가 읽는 성경의 내용과 동일한 히브리어 성경 중에서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은 가장 오래된 성경은 “알렙포 코덱스”(Aleppo Codex)입니다. 이 사본은 시리아 땅의 알렙포에 있는 회당에서 보관되었다고 해서 알렙포 코덱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비록 최종적으로는 시리아의 알렙포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 공동체의 회당에서 보관하게 되었지만, 알렙포 코덱스가 기록된 곳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서쪽에 있는 티베리아스라는 곳입니다. 이 곳은 성전 멸망 이후,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와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이름난 랍비들이 이 도시에 이주해서 살았고, 그들이 가르치던 학교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탈무드”(Talmud)라고 들어보셨을 거예요. 탈무드라 불리는 책들에는 두 가지 기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해당하는 고대 바벨론 지역에서 집대성된 탈무드(바벨론 탈무드 Talmud Bavli, 대략 500CE)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땅에서 집대성된 탈무드(예루살렘 탈무드 Talmud Yerushalmi/이스라엘 탈무드 Talmud Eretz Yisrael, 대략 350CE)이지요. 이 탈무드들 중에서 ‘예루살렘 탈무드’ 또는 ‘이스라엘 탈무드’라고 불리는 탈무드가 바로 티베리아스에서 집대성되었습니다. 히브리어는 원래 모음이 없이 자음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읽기의 통일성을 만들기 위해서 히브리어 모음 음가 표기의 기준을 만들었거든요. 그 기준을 만든 학자들(랍비들)이 살던 곳이 바로 티베리아스 이기도 합니다. 알렙포 코덱스는 10세기(대략 930CE)에 아론 벤 모세 벤 아셀(Ahron ben Moshe ben Asher)이 필사한 것인데요. 이 코덱스가 만들어질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히브리어로 읽고, 쓰고, 대화하던 도시가 티베리아스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티베리아스에서 알렙포 코덱스가 기록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알렙포 코덱스가 매우 권위있는 사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티베리아스에서 기록된 이 사본은 필사자인 아론 벤 모세 벤 아셀이 죽은 후에 예루살렘으로 옮겨졌고, 다시 이집트를 거쳐, 시리아의 알렙포까지 가는 기나긴 여행을 했습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잉크가 벗겨져 나간 곳이나, 곰팡이 때문에 코덱스의 일부분이 홍조가 생기면서 잉크가 보랏빛으로 변색된 부분들이 있기도 했지만, 이 사본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가상했던지, 오래된 많은 사본들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사본 중의 하나가 가장 오래된 알렙포 코덱스입니다. 이렇게 1,000년 이상 잘 보관되던 알렙포 코덱스에게도 시련이 닥쳤습니다. 1947년에 반 유대주의가 시리아 지역에 확산이 되면서, 유대인들을 혐오하는 이들의 폭동이 알렙포에서 있었고, 이들이 알렙포 사본이 보관된 회당을 파괴하고 불을 질러 버린 거예요.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UN에서 팔레스타인 땅을 분할하여서 ‘이스라엘’이라는 신생국가의 설립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약을 한 후, 심상치 않은 중동의 정서를 읽은 시리아의 유대인들이 행여나 발생할 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비해서 일부의 성경 두루마리들과 코덱스들을 회당 밖으로 옮겼고, 폭동이 일어나자 미처 옮기지 못한 것들을 회당의 마루바닥에 숨겨 두기도 했습니다. 이 혼란 중에 알렙포 코덱스가 간신히 살아남기는 했지만, 대략 200쪽이 유실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가서, 전도서,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등의 부분은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비록 소실 되었으나, 남겨진 이 값진 알렙포 코덱스를 보존하기 위해 1958년에 시리아 사람들 몰래 이스라엘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1986년에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서는 이 사본을 최대한 복원하고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파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은 부분들과 일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남아 있는 부분들, 그리고 알렙포 공동체의 후손들이 회당을 빠져 나오면서 가지고 나왔던 것들을 기부받으면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미국으로 이주했던 이 공동체의 후손은 1981년까지 자기의 서랍장 속에 뜯겨져 나간 알렙포 코덱스의 일부를 보관해 오다가, 이 프로젝트를 알고 기부하기도 하였고, 출애굽기의 한 부분은 미국으로 이주한 알렙포 공동체 유대인의 지갑 속에 보관되다가 기증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학자들의 노력 끝에 2001년에 “케테르 예루샬라임”(Keter Yerushalaim)이라는 이름으로 알렙포 코덱스에 근거한 히브리어 성경이 히브리대학교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손 위에 올려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드라마틱한 배경이 그 뒤에 숨어 있는지 알게 된다면, 성경을 대하는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마주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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