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신년과 대속죄일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물어 오시는 분들이 있어서 모든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대답드립니다. 이스라엘 따라가기에서 다루기에는 좀 복잡한 내용이고,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에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준학술자료제 맘대로 분류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학술자료 요약정리에 글을 포스팅합니다.

열흘간의 츄바 תשובה


בין כסה לעשור (벤 케세 레아소르)


 

"이스라엘 따라가기"의 유대교의 신년(https://biblia.co.il/유대교의-신년-rosh-hashanah/)에 포스팅한 글에서 우리말 성경 나팔절인 유대인의 신년-로쉬 하샤나-는 한해의 건강과 번영, 그리고 하나님의 왕권과 회개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티쉬레월 1일을 나팔절(신년), 그리고 10일을 대속죄일로 지킨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신년에서 대속죄일로 넘어가는 열흘(유대인들은 이 기간을 "츄바" תשובה또는 “벤 케세 레아소르" בין כסה לשעור 라고 부릅니다)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츄바"라는 말은 "돌아가다"라는 뜻입니다. 이 열흘 동안 유대인들은 회개 תשובה와 기도 תפילה, 그리고 구제 צדקה에 힘씁니다. 신년을 맞이하여서 자신들의 지난 죄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무관심으로 돌보지 못했던 이들을 다시금 생각하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말을 구약성서에서는 שו"ב라는 어근을 사용하고, 그 명사형태가 츄바 תשובה입니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과 같이 츄바라는 말은 돌아가다라는 뜻입니다. 현재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회개하다라는 말은 하라타 חרטה입니다. 이 하라타의 의미는 과거에 자신이 범하였던 죄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옳지 않은 생각 모두에 대한 깊은 반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구약성서에서도 현재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하라타라는 말의 어근 חר"ט를 사용하는데, 그 뜻은 돌판에 새기다입니다. 어근은 페니키아어에서 온 것인데, 내 삶에 새겨진 잘못된 삶과 지금도 계속 새겨가고 있는 나의 옳지 않는 삶을 회개하고, 완전한 새 사람으로 변하겠다는 다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라타도 참 의미있는 회개이지만, 대속죄일 전까지 유대인들이 지키는 츄바기간에는 하라타가 아닌 츄바를 더 중시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다라는 츄바와 새 사람으로 변하겠다는 하라타는 전혀 반대의 말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츄바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질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최초 인류의 선한 상태로 돌아가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열흘간의 츄바 기간은 새해를 맞이하였으니, 과거의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이제 새롭게 시작해보자고 작심하는 기간이 아니라, 과거의 내 모습을 반성하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기뻐하셨던 그 선한 상태로 돌아가자는 다짐의 기간입니다. 이 회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속죄일이지요. 대속죄일에 대해서는 또 말씀드리겠구요. 지금은 츄바기간에 유대인들이 힘쓰는 기도와 구제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기도 תפילה 라는 말은 구약성서에서 트필라 תפלה라고 합니다. 아주 멋진 번역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현대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기도라는 말은 트필라가 아니라, 바카샤 בקשה입니다. 바카샤라는 말은 무언가를 해달라고 간청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현대 히브리어에서도 영어로 Please라는 말을 베바카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츄바 기간에 드려지는 기도는 바카샤가 아니라 트필라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우리말로 기도하다 פל"ל라고 번역한 말의 어근은 아카드어에서 온 것인데 "감독하다", "관리하다", "지휘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성서의 의미에서 기도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해달라고 간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감독/관리/지휘를 따르겠다는 다짐이라고 이해해야합니다. 그래서 랍비들은 히브리어 트필라 פל"ל의 어근을 "하나님에게 맞추다"라는 말로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랍비들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츄바 기간 열흘 동안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마음껏 내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는 한 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한해 동안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구제 צדקה  히브리어를 조금 알고 계신 분들, 특별히 현대 유대인들의 삶에 대해서 알고 계신 분들은 유대인들의 구제헌금을 쯔다카 צדקה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도 구제라는 말로 쯔다카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말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기부행위 (Charity)는 쯔다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헤세드 חסד라고 합니다. 헤세드는 구약성서에서 참 많이 사용되는데 그 뜻도 참 다양합니다만, 가장 많이 번역되는 단어는 자비입니다. 그런데 쯔다카와 헤세드 간에는 현대 유대교 신학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헤세드라고 했을 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어떤 권리도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주는 사람이 주면 받는 것이고, 안주면 못받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헤세드는 의무가 아니라, 그저 주는 사람이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미덕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반면에 쯔다카는 구약성서의 원래의 의미가 의로움과 정직함입니다. 그럼, 의롭고 정직한 것과 구제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가요? 쯔다카는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적인 고백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쯔다카 정신입니다. 쯔다카의 개념에 따르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내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지금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행위가 쯔다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청나게 많은 것을 주셨지만, 일일이 그 댓가를 따져가면 받으시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빚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쯔다카를 하는 사람도 그 쯔다카를 받는 사람이 자기에게 빚진 것이 아닙니다. 이 쯔다카는 단지 경제적인 것만을 주는 기부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배우고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나누어 주는 것도 쯔다카입니다. 보이는 형태의 재화나 물건이든 무형의 지식이나 지혜나 배려심이든 무엇이든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함께 나누는 것이 쯔다카 입니다. 그것이 의무이기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기부행위를 말합니다.

종교적인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새해가 끝남과 동시에 츄바 기간을 지키고 대속죄일을 맞이합니다. 비록 츄바 기간은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쉬는 공휴일은 아니지만, 새해 ראש השנה-츄바 תשובה-대속죄일 יום כיפור의 명절과 기간을 서로 나눠서 보지 않고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사족을 붙이자면, 랍비 요시 바르 하니나 רבי יוסי בר חנינא 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에게 잘못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세번 이상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아니면 내게 용서를 빌러온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둘 모두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번이나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러 찾아가서 미안함을 이야기했는데에도 그것을 받아주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용서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요. 열흘 동안 용서를 구하는 행위는 단지 하나님에게만 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용서를 빌어야하는 기간이며, 동시에 용서를 해주는 기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