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몬 산에서 터져나온 샘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요단 강은 남북으로의 길이만으로도 약 250km나 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수량이나 강폭과 관계 없이 일년 내내 쉬지않고 흐르는 요단 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요단 강은 기적의 장소였습니다. 첫번째 기적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요단을 건널 때에 생긴일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려고 궤를 맨 제사장들이 강에 발을 옮기자 강물이 멈추어 선 것입니다(수 3:16-17). 강물이 멈추어선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와 함께 요단 강을 건널 때, 엘리야가 겉옷을 말아서 물을 치니 물이 갈라지고 여리고 맞은 편 요단 강을 건넜습니다(왕하 2:8). 그리고 엘리야를 하늘로 보낸 후, 엘리사가 다시 강을 건너 여리고로 돌아올 때, 엘리야가 두고간 겉옷을 내려치니 강의 물줄기가 다시 한번 섰습니다(왕하 2:14). 성경을 읽다 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멀쩡한 한강 물이 흐르지 않게 된다거나, 강 물이 멈추어 서고, 마른 땅을 건너 강남과 강북 사람들이 서로 왕래할 수 있다고 한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까요? “하나님께서 하신 기적이야.”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이성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성경 뿐 아니라, 역사 기록에도 요단 강의 물줄기가 끊어진 기록이 이곳 저곳에 있습니다. 가장 가깝게는 1927년에 요단 계곡 여리고 북쪽 15km 지점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강 주변의 진흙들이 강을 덮치면서 강 물줄기가 몇 시간동안 멈추어 섰고, 그 외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1906, 1834, 1546, 1534, 1267, 1160년에 강물이 멈추어 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짧게는 몇 시간 에서 길게는 10시간까지 말이지요. 대부분의 경우가 지진으로 강 주변의 토사가 강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강의 물길을 막은 경우들인데,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의심했던 제 이성의 아픈 곳을 콕 찌르는 기록들이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631" align="alignleft" width="2000"]image.axd 1935년 알렌비 국경의 홍수[/caption]

 

강물이 멈추어선 성경의 기록은 너무나 자세합니다. 성경에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널 때,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수 3:16)

라고 되어 있습니다. 강물이 아담에서 끊어졌다는 이야기인데, 위에서 말했던 역사 기록들에서도 항상 요단 강은 아담 주변에서 끊겼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변이 가장 부드러운 퇴적층인 데다가, 강 옆으로 깎아지르는 퇴적층 절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630" align="alignleft" width="2000"]image-1.axd 아담 지역을 지나가는 요단강[/caption]

요단 강에 얽힌 또 다른 기적 이야기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이야기 입니다.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을 때, 이스라엘 땅에서 잡혀가 나아만의 종노릇을 하던 여자 아이로부터 엘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병을 고치고자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엘리사는 그런 나아만을 쳐다보지도 않고서는 다짜고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지요. 그 물에 들어가서 씻으면 살이 회복되어 깨끗해질거라고 말입니다(왕하 5:10). 그런데 나아만의 눈에 요단 강은 들어가면 낫게 되는 강물이 아니라, 그저 흙탕물일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들어가면 피부병을 악화 시킬만한 흙탕물이요. 그보다도 깨끗한 물은 자기 나라에도 많지요. 다메섹 강도, 아바나 강도, 바르발 강도 요단 강물보다 더 깨끗하고 나은 강들이었습니다(왕하 5:12).

[caption id="attachment_1632" align="alignnone" width="2337"]Jordan Valley 요단 골짜기 동서 절단면[/caption]

요단 강물이 흙탕물인 이유는 강물이 흐르는 요단 계곡이 고운 흙으로 이루어진 퇴적층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의 가장 부르러운 퇴적층 지대가 아담 지역이고요. 깨끗하던 요단 강물이 요단 계곡의 퇴적층을 지나면서 물이 탁해지기 시작하는데, 아담 지역에 오면 완전히 흙탕물이 되어버립니다. 나아만이 요단 강의 어디 즈음에서 들어갔는지는 알수 없지만,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아만의 여종이 하는 것으로 보아서, 사마리아나 그 주변 지역에서 있었을 것이고, 그 곳에서 나아만을 보냈다면, 바로 아담 지역으로 내려와서 몸을 담그었을 것입니다. 완전히 흙탕물인 그곳 말입니다. 그런데 그 더러워 보이는 흙탕물에 몸을 씻었을 때에 아이러니 하게도 나병으로 더렵혀 졌던 몸이 깨끗해 졌다는 것은 또 다시 우리의 이성을 뛰어 넘는 일입니다. 그러니 제 이성적 사고와 관계없이 요단 강물이 끊어졌듯이 나아만이 고침을 받은 이야기도 단지 제 이성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더 이상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제게 있어서 요단 강에서 일어난 가장 큰 기적과 같은 사건은 뭐니뭐니 해도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인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죄로부터 돌아서는 자기 결단이자, 내 모든 과거를 끊어버리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죄로부터의 단절과 새로 태어남! 이것이 요한의 세례 였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터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겁니다(요 1:28). 그냥 친척 요한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그에게 세례를 받으려 나오신 것입니다. 요한은 당황했습니다. “정말 포기해야할 과거를 가진 이는 나인데, 왜 주님께서 내게로 오십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허락하라.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고 대답합니다. 요한은 세례를 주면서도 아마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포기해야할 과거가 무엇이란 말이냐는 거지요. 또 무엇이 예수님께서 추구하시는 "의"냐는 말입니다. 요한처럼 저도 예수님께서 포기하셔야만 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철저하게 사람이 되시기 위한 자기 비움을 “의”라고 말씀하신 것같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의”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순종함”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적용될 때에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지만, 그분이 스스로 하나님인 “예수님”에게 적용될 때에는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의지” “자신의 계획”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요, 인류의 구원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지위와 특성을 스스로 포기하시고 완전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를 따르시는 예수님의 자기 비움, 스스로 선택한 내려놓음, 그리고 포기가 예수님의 세례가 아니었나 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629" align="alignleft" width="3043"]2015-11-20 17.27.56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요단강 세례터 Qasr el Yahud[/caption]

그러고보면,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과 더불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던져주신 가장 처음의 메세지는 내려놓음, 자기 비움, 포기 였습니다. 알면 알수록 더욱 아는 척하게 되고, 내가 더 잘 보는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점점 더 말이 많아지고, 내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되면, 점점 더 참견하게 되고,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면 점점 더 지적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내려 놓으셨습니다. 세상에는 왜 이리 잘난 사람이 많을까요? 왜 저는 늘 저를 내 세울까요? 큰 숨 한번 내쉬고, 이 기적이 제 삶속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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