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마지막 식탁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노래 했을 시편 116편에서는 "경건한 자들의 죽음"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하나님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시 116:14)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제자들은 그 노래의 숨은 뜻을 알고 있있을까요? 시 116:14에서 "경건한 자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시딤" חסידים 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 33:8에서는 "제사장""경건한 자" חסיד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제사장의 죽음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었을까요?

부지한 중에 범죄한 자들의 도피처였던 도피성은 억울한 이들에게는 안식처였지만, 동시에 살아 생전에는 나올 수 없었던 감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피성에서 나와 그립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인 것이지요.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민 35:28). 대제사장의 죽음은 단지 한 개인의 죽음, 또는 국가 지도자급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모든 것이 원래의 죄없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죽음은 단지 "슬픔"이 아니라, "새출발"과 "희망" 그리고 "다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자들의 죽음", 대제사장의 죽음은 억울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보시기에 귀중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시편 116편 14절을 노래하면서 예수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마음은 사뭇 달랐을 것입니다. 시편 114편 2절을 부르며 노래하던 바로 그 성소, "여호와의 성소" (시 114:2)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맞이하게 되실 죽음을 떠올리셨을 것이고, 제자들의 생각이야 알 길은 없지만, 그저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명절의 관례를 따라 작년에도, 올해도 , 그리고 내년에도 부를 "그냥" 노래이지 않았을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히 4:14). 예수님은 사람 가운데에서 택한 자가 아니라 (히 5:1-2), 하나님의 아들,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빌 2:6-8). 그리고 바로 그 대제사장 되신 예수께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십니다. 자기의 "살" "피"를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떡과 포도주로 나누어 주지만, 이제 내일에는 정말 내 살과 피를 주셔야할 예수님의 마음을 성찬상의 제자들은 알았을지 모르겠습니다. 

The Last Supper



[사순절 따라걷기] 세번째 - 경건한 자들의 죽음 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