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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던 무렵. 유다의 왕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패망의 길을 유다도 똑같이 걷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유다를 정벌하기 위해서 내려온다는 흉흉한 소문이 심심치 않게 히스기야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만들어낸 천혜의 절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은 성의 북쪽만 막아내면 되는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루살렘 성에도 한가지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온 예루살렘 주민에게 공급되어야할 물의 근원인 기혼샘이 성 밖에 있다는...
교회의 청년들과의 모임 중에 지난 한 해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지난 한해를 살아 왔는가?" 내게 있어던 큰 변화도, 큰 진전도, 그렇다고 대단한 시련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마땅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 삶은 은근한 내리막길이 아니었나 합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평지인줄로 착각하지만, 나도모르는 사이에 은근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아, 이 길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고 뒤돌아서서 다시 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너무나 힘이 들어요. 분명히 내 눈에...
유월절 마지막 식탁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노래 했을 시편 116편에서는 "경건한 자들의 죽음"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하나님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시 116:14)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제자들은 그 노래의 숨은 뜻을 알고 있있을까요? 시 116:14에서 "경건한 자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시딤" חסידים 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 33:8에서는 "제사장"이 "경건한 자" חסיד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제사장의 죽음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었을까요? ...
흔히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파스칼의 말대로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지금은 이렇게, 다음은 저렇게 변하기가 죽끓듯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시 118:8-9)"라고 말합니다. 이 성경구절은 유월절 식탁에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제자들도 이 시편 구절을 읽으...
사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절기 설교입니다. 절기는 매년마다 반복되고, 또 선택할 수 있는 성경의 본문도 한정되어 있어서 항상 새로운 것을 성경 안에서 끄집어 낸다는 것이 생각만큼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을 설교자들 중에서는 동의하지 못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앞두고 차근차근 예수님의 발자취를 함께 걸어가보려고 합니다. 혹시,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면 함께 공유하면서 좋은 묵상들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이웃의 설움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세상은 먼저 내미는 손길의 따뜻함으로 훈훈해 질겁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웃의 간절함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세상에는 나눔이 넘쳐날 것입니다. 정치적인 억압으로 억울함을 외치는 이웃의 애절함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세상에는 정의라는 디딤돌 위에 다시 서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어묵으로 장난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철부지 —나이가 중요한 것이 ...
자주 질문 받는 것 중의 하나는 도시간의 거리가 얼마가 되냐는 것입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의 길이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도시간의 직선거리를 알게 된다면, 성경에 나오는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얼마의 거리를 걸어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했는지,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걸어다니셨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번 업로드했던 Pre-Map을 이용해서 이스라엘의 도시와 도시 사이의 직선 거리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도 이 거리들을 다 외우지는 못하니, 오히려 제게 더 도움이 될 지도입니다. ...
마사다는 솔직히 왜 성지순례에 들어가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장소 중에 하나입니다. 멋지기는 합니다만, 그 멋진 것을 다 경험해 보지도 못하고, 약 1시간 30분 여만에 서둘러 내려오는 마사다는 그 입장료도 비쌀 뿐 더러, 성지순례의 원래 의미도 찾지 못하는 곳이지요. 하지만, 워낙에 알려진 장소인지라, 마사다가 빠지면 성지순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같아요. 하지만, 성지순례가 목적이라면, 굳이 꼭 가야할 곳이라고 추천하지는 않겠습니다. 혹시 마사다를 빼는 것이 아쉽다면, 이 글을 읽으시면서 그냥...
헬몬산에서 터져나온 샘들이 훌라 계곡에서 모여서 이루어진 요단강은 남북으로의 길이만으로도 약 250km나 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요단강"하면 생각나는 몇몇 이야기가 있지요. 구약시대에 요단강은 주로 그 강물 줄기가 멈추어 선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설 때에도, 엘리야를 하늘로 올려보내고 요단강을 다시 건너 여리고로 돌아오는 엘리사의 이야기에서도 요단강물은 멈추어 섭니다. 이 이야기들은 성경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자연의 섭...
이스라엘의 케이블 방송 시청료가 만만치 않아서, 인공위성 방송을 받아보는 작은 안테나를 샀습니다. 운이 좋게, 이 조그마한 접시로 한국의 모 교회에서 방송하는 위성 기독교 방송이 잡히더군요. 그저 한국말로 듣는 방송이 좋아서 아내와 함께 참 좋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방송이 식상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문득 방송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 예배는 사라지고 예배를 드리는 방법과 기술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앞 다투어 예배드리는 방법(The Art o...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유홍준 선생님이 우리 미술과 문화재에 눈을 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대답을 하셨더군요. "좋은 미술품을 좋은 선생과 함께 감상하며 그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여는 것."이라고. 성지 소개에 관한 글을 쓰기에 앞서 "제 개인적인 견해가 대부분일 이 글들을 어떻게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제 눈을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빌려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야생초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야생초 편지"는 황대권이라는 사람...
형도 아시잖아요, 그 때 그 사건. 제 기억으로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서 교회 건축을 위한 작정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선뜻 천만 원을 작정하셨지요 (1997년 당시). 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엄마가 안 계신 거예요. 피곤에 지치셔서 엄마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죠, "어디 다녀오셨어요?" 머뭇거리시던 엄마는 늦은 시간까지 한림대학교 앞의 닭갈비 골목의 한 집에서 설거지며 야채 써는 일을 하시다 오셨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