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식탁 (베드로 수위권 교회)
holinesscode
2017-11-03
저라면 그렇게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요 1:36)이라고 따르던 예수님, 그리고 영생의 길을 알게 하신 예수님(요 5:19-29). 제자들은 그 분이 부활과 생명되신다는 것을 이미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서 직접 경험했습니다 (요 11:25-26).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마자,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배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갈릴리로 돌아 와서는 뱃일을 합니다.
영화 같지요? 고기 잡이를 하고, 그물을 고치던 이들을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만나시고 제자로 부르시며,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카메라가 다시 호숫가로 돌아가서는 마치 과거의 일이 꿈이었던 듯, 수고하며 아무렇지 않게 뱃일을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 보세요.
저라면 그렇게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예수님이라면 조용한 새벽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향해서 “뭘 좀 잡았냐?”고 물어보지 않고 곧바로 배에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전부 갈릴리 호수로 발로 차서 밀어내 버리고서는 “삼일도 기다리지 못하느냐? 왜 내 부활의 소식을 전하던 여인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여기와서 뱃일을 하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던 것처럼 호숫가로 찾아와 그들을 부르셨던 것이지요. 그리고는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처럼 헛손질 하던 제자들에게 또 한번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뭐, 허탕치던 제자들이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은 일은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 기적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말입니다.
그 놀라운 일은 제자들, 그러니까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한 채, 갈릴리로 돌아와서는 예수님과 만나기 전과 다름 없이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찾아와서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위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직접! 처음입니다. 살아 생전 공생애 기간에 단 한번도 손수 식사를 준비해 주시지 않았던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반하고 모른다 부인했던 베드로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하고 떠나갔던 제자들을 위해서 식사를 차려주시는 거예요.
초대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이 사건이 참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사자의 밥이 되어야했고, 끓는 가마 솥에 들어가야했고,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던 초대 교회의 역사를 아실 겁니다. 예수님을 향한 신앙 때문에 잡혀간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고 살아 돌아와서는 기독교 공동체와 관계를 끊어야했던 사람들이 꽤나 있었을 겁니다. 오늘처럼 이사가 자유롭지 않던 과거에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던 사람들과 죽음을 무릎쓰고 복음을 붙잡고 있었던 사람들이 시장과 공공 장소에서 만나는 일이 부지기 수 였을 거예요. 배반했던 이들은 창피함과 미안함으로 그리스도 공동체를 회피했고, 교회 공동체는 배반한 이들을 배교자, 또는 변절자라고 손가락질 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런 초대 교회의 공동체에게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아침 식사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활의 사실을 믿지 못한 채, 과거에는 제자였으나, 이제는 제자는 커녕, 예수님과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인 양, 갈릴리에서 고기 잡이 하던 이들을 찾아와서는 마치 처음처럼 그들을 부르시고, 더군다나 식사까지 준비해 주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용서와 사랑, 그 용서와 사랑이 그들과 나를 용서해 주셨고, 과거의 죄를 다시 묻지 않으시고 그 품에 따뜻하게 안아 주셨는데, 우리가 무엇이라고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형제들을 죄인이라 손가락질 하고 나무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해야할 일은 “정죄”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라는 것, 심지어는 나를 배반한 이들에게까지!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차려주신 식탁(Mensa Christi)의 참 뜻이 아닐까 합니다. 갑자기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기꺼이 맞이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얼굴과 예수님의 얼굴이 묘하게 교차됩니다.
영화 같지요? 고기 잡이를 하고, 그물을 고치던 이들을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만나시고 제자로 부르시며,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카메라가 다시 호숫가로 돌아가서는 마치 과거의 일이 꿈이었던 듯, 수고하며 아무렇지 않게 뱃일을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 보세요.
저라면 그렇게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예수님이라면 조용한 새벽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향해서 “뭘 좀 잡았냐?”고 물어보지 않고 곧바로 배에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전부 갈릴리 호수로 발로 차서 밀어내 버리고서는 “삼일도 기다리지 못하느냐? 왜 내 부활의 소식을 전하던 여인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여기와서 뱃일을 하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던 것처럼 호숫가로 찾아와 그들을 부르셨던 것이지요. 그리고는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처럼 헛손질 하던 제자들에게 또 한번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뭐, 허탕치던 제자들이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은 일은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 기적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말입니다.
그 놀라운 일은 제자들, 그러니까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한 채, 갈릴리로 돌아와서는 예수님과 만나기 전과 다름 없이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찾아와서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위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직접! 처음입니다. 살아 생전 공생애 기간에 단 한번도 손수 식사를 준비해 주시지 않았던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반하고 모른다 부인했던 베드로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하고 떠나갔던 제자들을 위해서 식사를 차려주시는 거예요.
초대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이 사건이 참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사자의 밥이 되어야했고, 끓는 가마 솥에 들어가야했고,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던 초대 교회의 역사를 아실 겁니다. 예수님을 향한 신앙 때문에 잡혀간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고 살아 돌아와서는 기독교 공동체와 관계를 끊어야했던 사람들이 꽤나 있었을 겁니다. 오늘처럼 이사가 자유롭지 않던 과거에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던 사람들과 죽음을 무릎쓰고 복음을 붙잡고 있었던 사람들이 시장과 공공 장소에서 만나는 일이 부지기 수 였을 거예요. 배반했던 이들은 창피함과 미안함으로 그리스도 공동체를 회피했고, 교회 공동체는 배반한 이들을 배교자, 또는 변절자라고 손가락질 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런 초대 교회의 공동체에게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아침 식사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활의 사실을 믿지 못한 채, 과거에는 제자였으나, 이제는 제자는 커녕, 예수님과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인 양, 갈릴리에서 고기 잡이 하던 이들을 찾아와서는 마치 처음처럼 그들을 부르시고, 더군다나 식사까지 준비해 주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용서와 사랑, 그 용서와 사랑이 그들과 나를 용서해 주셨고, 과거의 죄를 다시 묻지 않으시고 그 품에 따뜻하게 안아 주셨는데, 우리가 무엇이라고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형제들을 죄인이라 손가락질 하고 나무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해야할 일은 “정죄”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라는 것, 심지어는 나를 배반한 이들에게까지!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차려주신 식탁(Mensa Christi)의 참 뜻이 아닐까 합니다. 갑자기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기꺼이 맞이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얼굴과 예수님의 얼굴이 묘하게 교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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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gchobiblia
- 2024-05-09 14:29:50
- holinesscode
- 2024-05-09 14:29:50
감사합니다. 목사님. 정말로 많은 기도가 필요하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지 희미하나, 곧 뚜렷이 보여주시리라 기도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 kngchobiblia
- 2024-05-09 14:29:59
이목사님, 2014년 초의 성지순례 기억나게 하네 그려.
이 글이 이곳에 들렀을 때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구먼. 그땐 정말 고마웠수.
얼마 안 남은 공부 잘 마치면 주님이 앞길을 선히 인도해 주시길 빌어요.
이 글이 이곳에 들렀을 때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구먼. 그땐 정말 고마웠수.
얼마 안 남은 공부 잘 마치면 주님이 앞길을 선히 인도해 주시길 빌어요.
- holinesscode
- 2024-05-09 14:29:59
감사합니다. 목사님. 정말로 많은 기도가 필요하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지 희미하나, 곧 뚜렷이 보여주시리라 기도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이 글이 이곳에 들렀을 때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구먼. 그땐 정말 고마웠수.
얼마 안 남은 공부 잘 마치면 주님이 앞길을 선히 인도해 주시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