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디야우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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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5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를 읽다가 흔히들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솔로몬이 죽은 후 왕국이 남과 북으로 분열이 되면서 남쪽 왕국 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지켰지만, 북쪽 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 신앙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추측하는 데에는 다 근거가 있습니다.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는 소가 그 자체로 신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러니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단과 벧엘에 두었다는 이야기는 남왕국 유다와는 달리 송아지를 상징하는 이방의 신들을 섬겼다고 추측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소는 또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 소는 신이 밟고 서 있는 토대이자 그 신의 의자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에는 여로보암이 소 자체를 섬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왕상 12:28에는 “너희의 신들”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단과 베델에 만든 두개의 금송아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하는 것이지요. 만약 그 금송아지들을 섬긴 것이 아니라면 왜 ‘신들’이라는 말을 사용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절을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보면,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 애굽 땅에 너희들을 올라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영어 성경도 마찬가지로) ‘신들’(복수)이라고 번역하였지만,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하나님’(단수 일반명사)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속죄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카포렛(כפרת)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은혜의 보좌’ mercy seat 라고 번역 되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시은좌’ 施恩座 라고 번역하기 도하였습니다. 이 ‘속죄소’는 ‘하나님이 앉으시는 의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성막에서는 구체적으로 두 그룹들이 앉아 있는 법궤의 뚜껑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궤를 하나님의 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이 고대 서아시아의 신앙과 뒤 섞인 것입니다. 북왕국의 여로보암은 베델과 단에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에는 법궤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법궤는 하나이고, 그 법궤는 유다 땅의 예루살렘 성전에 있기 때문이지요. 더군다가 그 법궤는 대제사장 이외는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전의 지성소에 법궤(하나님의 의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한번도 법궤를 보지 못한 북왕국의 여로보암과 그가 세운 제사장들은 신들의 의자 역할을 하는 송아지를 하나님의 의자인 법궤를 대신해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그리고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가나안과 주변 나라의 영향을 받은 여호와 하나님 예배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그 형식은 매우 이방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여로보암의 북왕국이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네요.
2018년에 히브리유니언대학교 예루살렘 캠퍼스의 다비드 일란(David Ilan)과 이팟 타레아니(Yifat Thareani)가 금송아지 숭배가 있었던 텔 단(Tel Dan)을 발굴하면서 기원전 9세기의 층위(Level)에서 깨진 토기의 손잡이 부분을 발굴하였습니다. 기원전 9세기는 두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 시기가 다윗 왕국이 남과 북으로 분열된 이후 시대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원전 9세기 중반에서 8세기 초반때에는 아람 사람들이 이 지역을 다스리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문화와 아람 사람들의 문화와 신앙이 서로 혼합이 되던 시대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토기에 새겨진 사람의 이름이 “이마디야우”였습니다. “이마디”라는 말은 ‘나와 함께’라는 뜻이고, ‘야우’는 ‘야후’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줄여서 표기하는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이 인장의 발견은 두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을 매우 비평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에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기원전 8세기, 대략 720 BCE를 전후로 해서 북왕국이 앗수르에 멸망을 당한 뒤에 시작되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2018년에 발견된 이 인장에서는 이미 그보다도 대략 100여년 전부터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자기의 이름에 넣을 정도였으니, 보기 좋게 그 비평적인 학자들의 주장이 무너진 셈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글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요. 북왕국 이스라엘이 왕국의 분열 이후에도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가나안과 주변 국가들의 신앙과 혼합되어 변질된 것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이에 (여로보암이)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왕상 12:28-29)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는 소가 그 자체로 신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러니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단과 벧엘에 두었다는 이야기는 남왕국 유다와는 달리 송아지를 상징하는 이방의 신들을 섬겼다고 추측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소는 또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 소는 신이 밟고 서 있는 토대이자 그 신의 의자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에는 여로보암이 소 자체를 섬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왕상 12:28에는 “너희의 신들”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단과 베델에 만든 두개의 금송아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하는 것이지요. 만약 그 금송아지들을 섬긴 것이 아니라면 왜 ‘신들’이라는 말을 사용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절을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보면,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 애굽 땅에 너희들을 올라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영어 성경도 마찬가지로) ‘신들’(복수)이라고 번역하였지만,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하나님’(단수 일반명사)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속죄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카포렛(כפרת)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은혜의 보좌’ mercy seat 라고 번역 되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시은좌’ 施恩座 라고 번역하기 도하였습니다. 이 ‘속죄소’는 ‘하나님이 앉으시는 의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성막에서는 구체적으로 두 그룹들이 앉아 있는 법궤의 뚜껑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궤를 하나님의 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이 고대 서아시아의 신앙과 뒤 섞인 것입니다. 북왕국의 여로보암은 베델과 단에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에는 법궤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법궤는 하나이고, 그 법궤는 유다 땅의 예루살렘 성전에 있기 때문이지요. 더군다가 그 법궤는 대제사장 이외는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전의 지성소에 법궤(하나님의 의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한번도 법궤를 보지 못한 북왕국의 여로보암과 그가 세운 제사장들은 신들의 의자 역할을 하는 송아지를 하나님의 의자인 법궤를 대신해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그리고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가나안과 주변 나라의 영향을 받은 여호와 하나님 예배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그 형식은 매우 이방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여로보암의 북왕국이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네요.
2018년에 히브리유니언대학교 예루살렘 캠퍼스의 다비드 일란(David Ilan)과 이팟 타레아니(Yifat Thareani)가 금송아지 숭배가 있었던 텔 단(Tel Dan)을 발굴하면서 기원전 9세기의 층위(Level)에서 깨진 토기의 손잡이 부분을 발굴하였습니다. 기원전 9세기는 두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 시기가 다윗 왕국이 남과 북으로 분열된 이후 시대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원전 9세기 중반에서 8세기 초반때에는 아람 사람들이 이 지역을 다스리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문화와 아람 사람들의 문화와 신앙이 서로 혼합이 되던 시대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토기에 새겨진 사람의 이름이 “이마디야우”였습니다. “이마디”라는 말은 ‘나와 함께’라는 뜻이고, ‘야우’는 ‘야후’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줄여서 표기하는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이 인장의 발견은 두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을 매우 비평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에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기원전 8세기, 대략 720 BCE를 전후로 해서 북왕국이 앗수르에 멸망을 당한 뒤에 시작되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2018년에 발견된 이 인장에서는 이미 그보다도 대략 100여년 전부터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자기의 이름에 넣을 정도였으니, 보기 좋게 그 비평적인 학자들의 주장이 무너진 셈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글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요. 북왕국 이스라엘이 왕국의 분열 이후에도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가나안과 주변 국가들의 신앙과 혼합되어 변질된 것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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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nny
- 2024-05-09 05:20:43
궁금했었던 잠을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jenny
- 2024-05-09 05:22:01
궁금했었던 잠을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jenny
- 2024-05-09 05:26:16
궁금했었던 잠을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jenny
- 2024-05-09 05:28:20
궁금했었던 잠을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jenny
- 2024-05-09 05:29:34
궁금했었던 잠을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