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짜드 하샤브야후 -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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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9
안식일은 하나님을 위한 날이면서, 동시에 인간, 그리고 모든 숨쉬는 생명체를 위한 쉼의 날입니다 (출 20:8-10; 23:12).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에게 처음 주신 것은 ‘일’이 아니라, ‘쉼’, 곧 안식이었습니다 (창 2:1-3). 쉼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지켜야하는 창조 질서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기에, 인간은 하나님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이 안식한 그 날에 함께 쉬어야 하는 의무가 지워졌다고도 말합니다 (Wenham).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고백의 행위가 곧 안식이라는 거지요. 이 날에는 노예 살이 하고 있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했던 때를 기억하면서 노예와 가축, 그리고 이스라엘 중에 머무는 나그네 마저도 모두 쉼을 명령하셨습니다 (신 5:12-15). 그러니, 안식일의 쉼은 단지 ‘일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그 깊은 곳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을 인정함,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것에 대한 찬양, 그리고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자유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함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을 위해서 따로 구별해 놓은 (성경에서는 이 말을 ‘거룩한’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날’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이 그리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의와 관련된 행동을 제외한 일체의 ‘일’을 모두 금합니다 (민 28:9-10). 심지어 성막과 성전에서 조차도 제의와 관련된 행동을 제외한 다른 행동들 (예를 들어서, 성막의 한 귀퉁이에 실이 삐죽 튀어 나왔다고 그 튀어 나온 실을 자르는 행동과 같은 일) 은 엄격하게 금합니다. 안식일에 나의 삶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곧 안식일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믿음의 고백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쉼’이나, 그 내면에는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 담겨 있는 거지요.
처음에 이스라엘에 가서는 이 안식일이 매우 신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니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대중교통이나, 어떤 가게도 문을 열지 않으니, 집 밖에 나가서 어디를 갈 방법도 없고, 혹 어찌 어찌해서 시내를 간다고 쳐도, 가서 할 것이 없습니다. 다 문을 닫았거든요. 급하게 뭘 사려고해도 파는 사람이 없으니 살 방법도 없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불편한 나라가 어디있을까요!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샤밧”이라는 장(章)에는 하지말아야할 일의 목록을 39가지로 규정했습니다 (b.Shabbat 7b). 그렇다고 이 서른 아홉가지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목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목록을 보면, (1)부터 (12)까지는 농업 또는 농업 생산물과 관련된 모든 생계 활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13)부터 (31)까지는 목축, 그리고 목축의 결과 얻게 되는 양모로 삶의 지탱해주는 일체의 활동을 금지합니다. (32)와 (33)은 공부와 관련된 것들이고요, (34)와 (35)는 건축과 관련된 일입니다. (39)는 상업 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 리스트를 보면, 이윤을 얻거나,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체의 모든 행동들을 모두 금지하는 듯합니다. 이게 전부가 아니라, 이 이외에도 도시의 경게에서 960m 이상 밖으로 걸어가지 못하게 하거나하는 또 다른 많은 금지 규정들이 있습니다. 시대와 문화가 바뀌면서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더 많은 규정들이 덧붙여 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타거나, 쇼핑을 하거나, 전화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모든 전기 제품의 전원을 켜거나 끄는 행위, 정원을 가꾸거나,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것 등 말이지요.
그런데 몇 달지나다보니,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쉽니다. 주간 동안 번잡했던 도로들에 차가 다니지 않고, 시끌벅적했던 상가들은 모두 문을 닫습니다. 사람들은 오전과 저녁에 회당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온 가족이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진정한 쉼을 누립니다. 글씨를 쓰는 것도 허락되지 않으니, 아이들 학교에서 숙제도 내주지 않습니다. 쉼과 함께 가족도 만들어지구요. 거리에 나가면, 슈퍼집 사장님, 우리 아이들의 소아과 의사 선생님, 피자 배달하던 친구들과 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모두가 거리와 공원, 그리고 회당에서 만나 사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습니다.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습니다. 다들 거리의 의자에 앉아서, 집의 계단에 앉아서, 공원의 잔디에 앉아서 그렇게 안식일을 가족과 또 이웃과 더불어 보냅니다. 그러니,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단 하루의 쉼도 없이 ‘쉼’마저도 ‘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 적응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 안식일에 대해서 150여년 전부터 고대 서아시아의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바벨론의 영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안식일 율법에 대한 성경 지식과는 거리가 멀지요? 그런데 학자들은 그리 생각했다는 겁니다. 고대 서아시아의 유물들이 1900년대 초반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유사한 풍습과 문화들을 그들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물들을 기준으로 성경을 설명하는 것이지요. 이런 비교 연구는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교 연구를 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몇가지 편견이 있었습니다. (1) 고고학적 유물이 성경의 기록보다 더 가치가 있고, (2) 앗수르(Neo-Assyria)와 바빌론(Neo-Babylon)의 문화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문화보다 그 가치가 우월하기에, (3) 성경은 고고학에 근거한 고대 서아시아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종교적인 행위들을 그대로 옮겨왔을 것이다라는 겁니다. 이런 직선적 역사 이해가 발판이 되어서,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그곳에서 7일 주기의 달력을 받아들이고, 안식일 역시 바벨론 포로기가 되어서야 유대인 사회에서 확정된 쉼의 날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했던 거지요. 이 주장이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거의 정설처럼 자리매김 했었습니다. 이 학설을 반박할만한 성경 이외의 고고학적인 증거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학자들은 매우 기계적으로 안식일에 대한 구절이 성경에 나오면, 그 성경 구절은 바벨론 포로기, 또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습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요.
1960년에 메짜드 하샤브야후 (Mezad Hashavyahu)를 나베 (J. Naveh)가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로 7.5-16.5cm, 세로 20cm, 두께는 4-6mm가 되는 토기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그 토기 조각에는 검은색 잉크로 14줄의 히브리어 문장이 적혀 있었어요. 메짜드 하샤브야후라는 지역은 기원전 7세기때 잠시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기 한 세기 이전에 사람들이 살던 지역인 거지요. 구약 시대 중, 대략 요시아 왕의 시대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기록된 토기 조각의 기록에는 쇼바이의 아들 호샤야후가 와서는 자기의 옷을 가져갔다고 그 지역의 우두머리 관리에게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호샤야후가 옷을 강탈해 갈 때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안식일” 전, 추수하고 곡간에 추수한 것들을 거두어 들일 때라고 분명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성경 이 외에 고고학 유물로 “안식일”이라는 말이 나온 처음이자, 유일한 포로기 이전 시대의 유물인 것입니다. 당연히 이 유물은 고고학계와 성서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지요. 약 80년 간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제를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놀라운 발견! 이것은 성경을 객관적 역사로 만드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이 그리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의와 관련된 행동을 제외한 일체의 ‘일’을 모두 금합니다 (민 28:9-10). 심지어 성막과 성전에서 조차도 제의와 관련된 행동을 제외한 다른 행동들 (예를 들어서, 성막의 한 귀퉁이에 실이 삐죽 튀어 나왔다고 그 튀어 나온 실을 자르는 행동과 같은 일) 은 엄격하게 금합니다. 안식일에 나의 삶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곧 안식일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믿음의 고백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쉼’이나, 그 내면에는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 담겨 있는 거지요.
처음에 이스라엘에 가서는 이 안식일이 매우 신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니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대중교통이나, 어떤 가게도 문을 열지 않으니, 집 밖에 나가서 어디를 갈 방법도 없고, 혹 어찌 어찌해서 시내를 간다고 쳐도, 가서 할 것이 없습니다. 다 문을 닫았거든요. 급하게 뭘 사려고해도 파는 사람이 없으니 살 방법도 없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불편한 나라가 어디있을까요!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샤밧”이라는 장(章)에는 하지말아야할 일의 목록을 39가지로 규정했습니다 (b.Shabbat 7b). 그렇다고 이 서른 아홉가지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목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 씨 뿌리기, (2) 땅 일구기, (3) 추수하기, (4) 긁어 모으기, (5) 낱단 묶기, (6) 타작하기, (7) 까부르기, (8) 곡식 추리기, (9) 빻기, (10) 체질하기, (11) 반죽하기, (12) 빵굽기, (13) 양모를 칼이나 가위로 자르기, (14) 양모 씻기, (15) 양모를 두드려 다듬기, (16) 양모에 염색하기, (17) 양모 짜기, (18) 실을 고리로 만들기, (19) 실을 이어 직조하기, (20) 실을 둘로 나누기, (21) 매듭짓기, (22) 매듭 풀기, (23) 바느질하기, (24) 찢기, (25) 덫을 치기, (26) 도축하기, (27) 동물이나 과일의 껍질 벗기기, (28) 무두질하기, (29) 피혁 매만지기, (30) 피혁에 표시하기, (31) 피혁 자르기, (32) 두 글자 이상 쓰기, (33) 두 글자 이상 지우기, (34) 건축하기, (35) 건축물 철거하기, (36) 불끄기, (37) 불켜기, (38) 마무리 작업 마치기, (39) 개인의 물건을 공공 장소에 옮기거나, 공공장소에서 물건을 1.7미터 이상 옮기기.
이 목록을 보면, (1)부터 (12)까지는 농업 또는 농업 생산물과 관련된 모든 생계 활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13)부터 (31)까지는 목축, 그리고 목축의 결과 얻게 되는 양모로 삶의 지탱해주는 일체의 활동을 금지합니다. (32)와 (33)은 공부와 관련된 것들이고요, (34)와 (35)는 건축과 관련된 일입니다. (39)는 상업 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 리스트를 보면, 이윤을 얻거나,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체의 모든 행동들을 모두 금지하는 듯합니다. 이게 전부가 아니라, 이 이외에도 도시의 경게에서 960m 이상 밖으로 걸어가지 못하게 하거나하는 또 다른 많은 금지 규정들이 있습니다. 시대와 문화가 바뀌면서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더 많은 규정들이 덧붙여 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타거나, 쇼핑을 하거나, 전화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모든 전기 제품의 전원을 켜거나 끄는 행위, 정원을 가꾸거나,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것 등 말이지요.
그런데 몇 달지나다보니,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쉽니다. 주간 동안 번잡했던 도로들에 차가 다니지 않고, 시끌벅적했던 상가들은 모두 문을 닫습니다. 사람들은 오전과 저녁에 회당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온 가족이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진정한 쉼을 누립니다. 글씨를 쓰는 것도 허락되지 않으니, 아이들 학교에서 숙제도 내주지 않습니다. 쉼과 함께 가족도 만들어지구요. 거리에 나가면, 슈퍼집 사장님, 우리 아이들의 소아과 의사 선생님, 피자 배달하던 친구들과 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모두가 거리와 공원, 그리고 회당에서 만나 사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습니다.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습니다. 다들 거리의 의자에 앉아서, 집의 계단에 앉아서, 공원의 잔디에 앉아서 그렇게 안식일을 가족과 또 이웃과 더불어 보냅니다. 그러니,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단 하루의 쉼도 없이 ‘쉼’마저도 ‘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 적응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 안식일에 대해서 150여년 전부터 고대 서아시아의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바벨론의 영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안식일 율법에 대한 성경 지식과는 거리가 멀지요? 그런데 학자들은 그리 생각했다는 겁니다. 고대 서아시아의 유물들이 1900년대 초반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유사한 풍습과 문화들을 그들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물들을 기준으로 성경을 설명하는 것이지요. 이런 비교 연구는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교 연구를 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몇가지 편견이 있었습니다. (1) 고고학적 유물이 성경의 기록보다 더 가치가 있고, (2) 앗수르(Neo-Assyria)와 바빌론(Neo-Babylon)의 문화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문화보다 그 가치가 우월하기에, (3) 성경은 고고학에 근거한 고대 서아시아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종교적인 행위들을 그대로 옮겨왔을 것이다라는 겁니다. 이런 직선적 역사 이해가 발판이 되어서,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그곳에서 7일 주기의 달력을 받아들이고, 안식일 역시 바벨론 포로기가 되어서야 유대인 사회에서 확정된 쉼의 날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했던 거지요. 이 주장이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거의 정설처럼 자리매김 했었습니다. 이 학설을 반박할만한 성경 이외의 고고학적인 증거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학자들은 매우 기계적으로 안식일에 대한 구절이 성경에 나오면, 그 성경 구절은 바벨론 포로기, 또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습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요.
1960년에 메짜드 하샤브야후 (Mezad Hashavyahu)를 나베 (J. Naveh)가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로 7.5-16.5cm, 세로 20cm, 두께는 4-6mm가 되는 토기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그 토기 조각에는 검은색 잉크로 14줄의 히브리어 문장이 적혀 있었어요. 메짜드 하샤브야후라는 지역은 기원전 7세기때 잠시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기 한 세기 이전에 사람들이 살던 지역인 거지요. 구약 시대 중, 대략 요시아 왕의 시대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기록된 토기 조각의 기록에는 쇼바이의 아들 호샤야후가 와서는 자기의 옷을 가져갔다고 그 지역의 우두머리 관리에게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호샤야후가 옷을 강탈해 갈 때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안식일” 전, 추수하고 곡간에 추수한 것들을 거두어 들일 때라고 분명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성경 이 외에 고고학 유물로 “안식일”이라는 말이 나온 처음이자, 유일한 포로기 이전 시대의 유물인 것입니다. 당연히 이 유물은 고고학계와 성서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지요. 약 80년 간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제를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놀라운 발견! 이것은 성경을 객관적 역사로 만드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 토기를 그리고 그 해석을 참고한 책들과 이 글을 쓰는데 바탕이 된 책들 Naveh, Joseph. “A Hebrew Letter from the Seventh Century B.C.” Israel Exploration Journal 10[3] (1960): 129-139. Rainey, Anson F. “Syntax and Rhetorical Analysis in the Hashavyahu Ostracon.” Journal of the Ancient Near Eastern Society 27 (2000): 75-79. Wenham, Gordon J. The Book of Leviticus. New 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3. Grand Rapid: William B. Eerdmans,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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