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데스바네아가 소란스럽습니다. 조금 전에 도착한 열 두명의 정탐꾼들로부터 가야할 땅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정탐한 땅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왔습니다. 그리고 석류와 무화과 열매도 따서 돌아왔습니다. 40일 동안 이들이 돌아오기 만을 기다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기뻐했지요. 정말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분명했거든요.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혔습니다. 이어서 모세에게 보고하는 그 땅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절망적이었거든요. 

“그렇지만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은 강하고, 성읍들은 견고한 요새처럼 되어 있고, 매우 큽니다. 또한 거기에서 우리는 아낙 자손도 보았습니다. 아말렉 사람은 네겝 지방에 살고 있고, 헷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아모리 사람은 산악지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은 바닷가와 요단 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민 13:27-28,31)

모세에게만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함께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람들에게도 나쁜 소문들을 퍼뜨린 거지요.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 네피림 자손을 보았다. 아낙 자손은 네피림의 한 분파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민 13:32-33)

갈렙과 여호수아가 수습을 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삽시간에 이스라엘 진영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결국 동요한 이들 중에 몇몇은 모세와 아론 말고 다른 우두머리를 세우고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선동하기까지 했습니다(민 14:4).   

하나님께서는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점염병으로 심판하려고 하셨지만,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간곡하게 기도해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가라앉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평이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실한 징계를 내렸습니다.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거지요. 그리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불안에 빠지게한 10명의 정탐꾼들은 ‘죽음’이라는 벌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나온 이집트인데! 이 광야를 40년을 방황하다가 결국 가나안까지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하나님의 선언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거든요. 그래서 광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려고 모여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구름도 움직이지 않았고, 하나님의 연약궤도 그 자리에 그대로인데, 무턱대고 올라간거지요. 그러다가 결국은 아말렉, 아모리, 그리고 가나안 사람들에게 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호르마에 견고한 요새를 구축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호르마를 정복한 것은 그로부터 거의 40년 정도 뒤었습니다(민 21장).   

가나안의 사람들이 남쪽에서 올라올지 모르는  이스라엘을 견제하려고 세운 요새 호르마의 원래 이름은 아라드(아랏. 민 21:1)입니다. 아라드는 3100-2650BCE에 건재하다가 가뭄으로 도시가 무너진 뒤, 약 1500년동안 폐허로 남겨진 도시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 다시 요새화가 된 것이지요.   

처음 아라드라는 도시가 세워질 당시, 아라드는 약 500년동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하며 먹고사는 도시였습니다. 이스라엘 영토를 지나는 몇몇 이름난 도로들이 있지요? 해변 길(Via Maris), 대간선도로(The Great Trunk Road), 왕의 대로(King’s Highway)가 있고, 가나안 땅의 산지를 통과하는 중앙산지 길(Cetral Ridge Route)이 있습니다. 그리고 므깃도와 이스르엘을 설명하면서 소개했던 이스르엘 골짜기도 주요한 도로 중의 하나였지요. 그런데 아직까지 소개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도로가 있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가 해변 길 대간선도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이자 동시에 중앙산지 길이 시작되는 곳이라면, 그 보다도 훨씬 남쪽에도 이스르엘 골짜기처럼 동서를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길이 있었는데요. 그 길을 에돔 길(The Edom Highway)라고 부릅니다. 서쪽으로는 해변 길로부터 시작해서 동쪽으로 브엘세바를 거쳐 아라드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서 오늘 날 롯의 아내의 소금 기둥이라고 불리는 큰 소금 바위가 있는 소금 산(Jebel Usdum)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에돔 지역과 지중해를 잇는 무역 도로입니다. 로마 시대에도 소금 산의 소금을 로마로 옮기려는 목적으로 이 길을 그대로 이용했으니 이 도로는 3,000년이 넘도록 이용한 국제도로인 셈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 도로인지 알 수 있겠지요?   

이 무역로를 지키는 여러 요새 중의 으뜸은 아라드였습니다. 아라드는 이 무역로 뿐 아니라 유대 산지로 올라가는 중앙산지 길의 초입새였기 때문에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군사적 방비를 철저하게 해야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남쪽에서 올라오는 에돔의 군대라든가 이집트의 군대들은 유대산지로 올라가기 위해서 제일 먼저 공격해야하는 유다의 요새가 아라드가 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그래서 이집트의 파라오 쉐숑크(또는 쇼생크)가 926/5년 가나안 지역을 통과하여 지중해 동쪽 레반트 지역을 점령할 때 파괴한 도시 명단에 아라드가 기록되기도 하였지요.   

이 도시의 주요 목적이 중개무역 도시이자, 중개무역로를 보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늘 전쟁에 대비해야 했었습니다. 전쟁의 두려움과 긴장감 속에 살아야하는 아라드의 주민들과 병력들은 자연스럽게 그 어떤 도시보다 더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현실에 직면한 가장 큰 벽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그 도시의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신앙을 소유했더랬습니다. 그 증거는 아라드에서 발굴된 성소입니다. 가로 세로 약 42m×26m규모로 만들어진 성소에서 눈에 띄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제단입니다.   

제단은 출애굽기 27:1-2에서 그 크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현대식으로 계산을 하자면, 가로 세로 높이가 대략 2.28m×2.28m×1.37m(오차범위 각각+25cm)입니다. 그런데, 아라드에서 발굴된 제단의 크기가 딱 그 크기인 거지요. 그래서 성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라드의 제단을 출애굽기에 근거한 가장 이상적인 제단의 모양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목해야할 또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지성소입니다. 가장 거룩한 장소라고 여겨지는 곳에 2개의 향단과 2개의 주상(세워 놓은 돌)이 있는 거예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청사진에는 향단이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도 하나였지요. 그런데 아라드의 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주상이 2개, 그리고 각각의 주상 앞에 향단이 하나씩 있어서 마치 두 신들을 섬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에도 두 신들을 섬기는 예가 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늘 짝으로 함께 등장하지요(참조. 열왕기상 18장). 이 둘은 신화 속에서 서로 부부였습니다. 다신교 문화의 세계 속에 살던 고대 사람들의 전통은 신들도 여럿이고, 그들도 가정을 이루고 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들도 결혼하고 부부의 연을 맺는데요. 지중해 동편 레반트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부부 신들이 바로 바알과 아세라입니다.    그럼, 이 아라드는 도대체 어떤 신들을 섬겼던 걸까요? 확답을 할 수 없지만, 학자들은 아마도 남자 신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그리고 여자 신으로 아세라를 섬기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그리고 그 둘을 부부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과 고대 서아시아의 신앙이 혼합이 된 형태로 말입니다. 그것이 이 성소가 파괴되던 시대와 그 이후 시대 민간 신앙에서 널리 퍼져있었던 생각이었거든요. 그러니 아라드의 성소는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신 신앙이 가나안의 문화와 융합되어 다신교적인 성향이 토착화된 대표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라드 사람들은 지리적 요건으로 더욱 신앙에 열중할 수 밖에 없었던 아라드 사람들. 그러나 생존을 위한 절박함 때문에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순수한 신앙에서 빗겨나간 아라드의 성소는 히스기야 시대에 파괴가 됩니다. 흔히들 말하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왕하 18:1-12)의 결과였습니다.     

역사가 여기에서 끝나면 얼마나 멋질까요? ‘그래서 그들은 그 이후로 여호와 하나님 만을 섬겼다!’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아들 므낫세의 때, 아버지의 종교개혁은 모두 원상태로 되돌려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유다는 여호와 하나님 뿐 아니라, 그들의 욕망의 신들을 위한 산당들을 다시 세웠습니다. 유다의 역사가 이렇습니다.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