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참 중요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중에 ‘하솔’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갈릴리 지역의 도시 중의 하나인데요(수 11:11). 가나안 정복 전쟁 때 갈릴리 북부 지역의 도시와 성읍들을 공격하면서 유일하게 불살라 버린 도시이기도합니다. 왜 특별히 하솔만 그렇게 혹독하게 다루었을까요? 아마 하솔이 그 지역의 으뜸가는 도시(수 11:10)로 이 도시를 정복하는 것이 곧 북부 갈릴리 지역의  모든 성읍을 정복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전쟁의 본보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솔은 갈릴리 지역과 그 북쪽 지역을 통틀어 최고로 큰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여러번 등장합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에서 점령한 성읍으로 소개되었고요. 납달리 지파에게 주어진 지역이면서(수 19:36). 사사 시대로 오면, 하솔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드보라-바락의 전쟁에서 이 도시가 언급됩니다(삿 4:2,17). 나중에 이곳 하솔은 솔로몬 때 여호와의 성전, 왕궁, 예루살렘 성과 더불어 솔로몬이 건축한 세 개의 대표적인 도시들 중의 하나로 소개되기도 하지요(왕상 9:15).   

성경에만 소개된 것도 아닙니다. 고대 서아시아의 나라들이 가나안 땅과 그 도시들을 언급할 때 하솔을 이야기하는데요. 기원전 2천년대에 기록된 문서들 중에서 이집트의 저주 문서(이집트 사람들은 저주하려는 적들의 이름을 작은 조각 상이나, 그릇, 또는 점토나 돌조각에 써넣고 그것을 깨뜨려서 무덤 또는 제의식을 하는 곳 주변에 파묻으며 저주하였다.)라든가, 파라오 아케나텐(Akhenaten, r.1353-1336BCE 또는 1351-1334BCE) 시대에 기록된 아마르나 (Amarna) 서고에서도 하솔을 이야기합니다. 쐐기 문자로 쓰여진 마리(Mari) 서고에서도 하솔이 여러번 언급되고요.   

이런 역사들을 비추어 볼 때, 하솔은 북부 갈릴리 뿐 아니라, 북쪽 가나안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로부터 철기 시대에 이르기까지(앗수르 왕 디글랏 빌에셀의 때까지, 대상 5:26) 지중해 동쪽의 수 많은 도시들 중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도시 규모만 보아도 어마어마 하거든요.   

하솔은 상부 도시(Upper city, 도시가 언덕과 평지가 한데 어우려져 있는데, 언덕을 상부 도시로 평지를 하부 도시로 구분 지어 부른다.)와 하부도시(Lower city)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솔 전체 지역의 크기만도 809,371㎡(244,835평)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한 지역의 전체 인구의 대략 10% 정도가 성벽으로 둘러쌓인 도시에 거주하였고, 그 외의 사람들은 도시 성벽 밖에서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추정하는데요. 하솔의 규모로 보아서 추정 가능한 주민의 수가 10,000-15,000명이니, 아마 도시 성벽으로 둘러싸인 하솔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수와 성벽 밖에서 농업이나 목축을 했던 사람들의 수를 합치면, 하솔이라는 지역에는 그 보다도 훨씬더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겁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는 정말 거대한 도시입니다! 통일 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도 솔로몬 시대에는 대략 5,000명, 유다가 가장 번창하던 히스기야 시대에 수도 예루살렘 거주민이 약 25,000명, 예루살렘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헤롯 왕가 때 예루살렘 함락 전 주민의 수를 80,000명으로 추산하는데, 이미 여호수아 정복전쟁의 때부터 하솔은 일반적인 도시를 뛰어 넘는 규모를 갖추고 있었던 거지요. 

  하솔이 이렇게 큰 도시로 성장한 배경에는 지리적인 요건이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하솔은 갈릴리 호수와 요단 강의 발원지인 단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요. 지금은 그 면적이 5㎢ 정도로 쪼그라들어서 흔적만 남아 있는 훌라 호수(Lake Hulah)에서 갈릴리 호수로 흘러 내려가는 요단 강을 내려다 보는 요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이 호수가 오염되기 전까지는 훌라 호수는 남북으로 5.3km, 동서 폭은 4.4.km가 되는 커다란 호수였습니다. 면적을 따지면, 14㎢(4,235,642평, 서울대학교 면적)이나 되는 큰 호수입니다. 수심은 계절에 따라서 1.5m-3m 밖에 되지 않지만, 오히려 수심이 낮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습지가 조성될 수 있었고, 이곳에 파피루스들이 대규모로 자랐거든요. 1882년 이 지역을 방문한 여행자의 기록에 따르면 이런 습지 덕분에 이 곳은 검은 표범과 얼룩 표범, 곰, 야생 멧돼지와 늑대, 여우, 자칼, 하이에나, 바위 염소, 그리고 수달들이 번식하고 야생 조류들도 풍족하여 사람들이 사냥을 즐겼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파피루스로 방석이나 돗자리들을 만들어서 사용하였다고 하솔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물도 풍족하고, 그 주변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농사를 짓기에도 최적의 장소이고, 고대 주요 도로(대간선 도로 Great trunk road)가 지나는 훌라 골짜기에 위치해 있으며, 생활용품을 만들거나 기록을 남기는 종이를 생산할 수 있는 파피루스도 풍부한 이 곳에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리고 곧 이어 큰 성읍과 도시를 이루고, 요새화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래서, 주로 부유한 지배계층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하솔 상부도시를 발굴해 보면,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성벽의 형태들과 육중한 성문, 거대한 현무암 궁전과 제의 장소, 비옥한 땅의 물자들을 보관하는 저장 창고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요한 도로가 지나는 살기 좋은 땅에 살려면 그 만큼 위험을 감수해야합니다. 그렇게 좋은 땅, 좋은 도시를 주변 나라나 지나가는 큰 군대가 가만 놔둘리가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하솔에서는 전쟁을 대비하는 높은 망대와 전쟁 때를 대비하여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수로를 구비해야했습니다. 이 지역이 전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유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2022년 하솔이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토였으며 아합 시대 이후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던 시대 주거층(Area M, Strata VI과 VII, ca.840-732BCE)을 발굴하던 중 이집트나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 인장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던 완화휘석(enstatite)으로 만들어진 봉인 인장(Stamp seal)을 발굴했습니다.  이 지역은 지리적 장점과 그 장점이 주는 여러 혜택 때문에 외적이 자주 침입하였고, 이스라엘이 앗수르, 아람과 같은 나라들과 전쟁으로 빼앗기고 다시 되찾아오는 역사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누가 이 인장의 주인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이 봉인 인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페니키아 사람들의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인장에는 창을 들고 있는 남자(영웅? 또는 신?)가 일곱개의 머리가 달린 뱀을 잡고서 찌르고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몸통은 사자이고 머리는 독수리인 그리핀, 그리고 그 뒤로는 날개가 달린 풍뎅이, 그리고 날개달린 코브라와 원숭이 두 마리, 마지막으로 이집트 양식의 고리 모양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데요. 이것은 고대 서아시아 지역의 신화와 상관 관계가 있습니다.  

기원전 2600-2300년 사이(Early Dynastic III)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용사의 신(전쟁의 신) 니누르타(Ninurta)가 머리가 일곱 달린 뱀과 괴물들을 죽이는 신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화와 머리 일곱 달린 뱀의 이야기가 서쪽으로 전해지면서 시리아 지역의 에블라에서는 핫두(Haddu 또는 하다드 Hadad)가 니누르타의 역할을 하는 신으로 소개되었고, 기원전 13세기 우가릿에서는 아나트(Anat)와 바알(Baal)이 이 바다 뱀인 툰나(Tunna) 또는 리탄(Litan)을 물리치지요(KTU 1.3 III 34-42; 1.5 I 1-3; 1.6 VI 45-53). 고대 서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몰고오는 괴물(악의 세력)과 같은 적군을 툰나와 리탄으로 불렀지만 성경에는 이들을 용(탄닌 Tannin)과 리워야단(Leviathan)이라 부릅니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Tunna➡Tannin)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리워야단(Litan➡Leviathan)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시 74:13-14)  

시편에서는 구체적으로 이 용이 머리 일곱 달렸다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마치 고대 서아시아의 서사시처럼 구체적으로 그 외모를 묘사합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계 12:3)  

그러므로 성경에 등장하는 머리 일곱 달린 용, 또는 용과 리워야단은 당시 사람들이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오는 존재를 괴물처럼 묘사하고 부르는 매우 관용적인 표현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이런 관용적인 방법을 습관적으로 차용했지요. 마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전도’, ‘집사’, ‘참회’, ‘난장판’, ‘다반사’등의 불교에 뿌리를 둔 용어들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듯 말이지요.   

하솔에서 영웅(신)이 머리 일곱 달린 뱀을 죽이는 인장이 발굴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하솔이라는 지역이 전쟁의 두려움과 염려 속에서 살았고, 하솔에 살았던 가나안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전쟁의 신을 상징하는 인장 목걸이를 가지고 다녔고,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그들처럼 전쟁을 이기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민간 신앙처럼 이 인장을 부적마냥 가지고 다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솔의 유명세와 그 유명세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아니었을까요? 

하솔_개정.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