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 단 -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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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3
고대의 바벨론과 이집트의 역사 기록물 중에서 왕에 대한 기록들은 대부분 전쟁에서 승리한 이야기이거나, 어떤 신을 위해서 신전을 건축하였다는 이야기들로 빼곡 차 있습니다. 많은 나라의 역사기록은 신들이 보호하는 왕들을 위한 기록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왕들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실패한 전쟁도 없고, 실패한 정치도 없이 그야말로 왕에 대한 칭송 일색이 허다합니다.
그런데, 왕에 대한 단편적이고 성공적인 통치와 건축에 대한 정보 전달 위주의 고대 서아시아의 기록과는 달리, 구약 성경 에서 전하고 있는 왕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그야 말로 구약성경 만의 독특한 왕들의 역사 기록방식이었습니다. 왕의 긍정적이고 성공한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 왕이 저질렀던 온갖 악행들마저도 거름종이 없이 기록된 성서를 보면서, 많은 학자들은 이 성서의 내용이 허구에 근거한 문학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어느 고대 국가의 역사 기록이 자기 왕에 대한 죄악상을 그렇게 낯낯이 기록했냐는 거지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한 다윗입니다. 고난의 삶을 헤치고 왕이 된 영웅적인 인물로 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에 왕이 저질렀던 성적인 범죄들을 적나라하게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왕자들 간의 암투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이야기들을 드러낸다는 것은 고대 역사 기록의 상식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윗과 다윗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보건데, 다윗이 역사적인 인물이었다기 보다는 고대 이스라엘 문학에서 왕국의 시조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는 설화에 등장하는 허구적인 주인공에 불과하며, 역사성을 담보하기 힘들지 않냐는 의구심을 품습니다. 역사적인 증거를 중요시 하는 학자라면 자연스럽게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일군의 고고학자들이나 역사 학자들은 정말 그렇다고 주장하는 많은 논문들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수많은 전쟁을 치루었다는 이야기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전쟁을 했다고하는 그 나라의 기록을 아직 발굴하지 못했을 뿐더러, 가끔씩 발굴되는 비문이나 토기에도 다윗과 벌인 전쟁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12" align="aligncenter" width="3043"] 여로보암이 쌓은 제단. 텔 단(Tel Dan)에서 발굴된 제단 터. 여로보암 시대로부터 기원전 2-3세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던 제단의 터가 발굴 되었다[/caption]
1993년과 94년에 걸친 고고학 발굴이 텔 단(Tel Dan)에서 있었습니다. 사실 이 때에 발굴 책임자인 비란(Biran)이 발굴하고 싶었던 것은 북왕국 첫번째 왕이었던 여로보암의 흔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곳에서 여로보암이 쌓은 제단 터부터 시작해서 고고학 역사에 오랫동안 회자될 중요한 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에서 백미를 꼽으라면, 현무암에 아람어로 새겨진 돌판일 겁니다.
기원전 9세기에 기록된 이 돌판에는 의례 고대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아람 왕 하자엘이 승리한 전쟁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돌판에는 하자엘이라는 이름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치룬 전쟁의 상대편이 눈에 띕니다. 왜냐하면, (북왕국)“이스라엘의 왕”과 “다윗 왕가”(남왕국 유다)이라고 쓰여져 있기 때문이지요. 아쉽게도 깨진 돌판에서는 도대체 이스라엘과 유다의 어느 왕들과 전쟁을 했는지 그 이름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돌판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단서를 주었습니다. 왕하 8:7-15에는 하자엘이 아람의 왕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자엘이 왕이 되면 이스라엘의 자손들(북왕국과 남왕국 모두)벌이게 될 엘리사의 잔혹한 전쟁 예언이 나옵니다(왕하 8:12). 그리고서는 곧이어 서로 친족 관계인 요람(북왕국)과 아하시야(남왕국)가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 왕 하사엘과 전쟁을 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왕하 8:28). 현무암 돌판이 기록된 기원전 9세기에 아람 왕과 이스라엘, 그리고 유다 왕이 벌인 전쟁의 이야기는 아마도 열왕기서에 기록된 것처럼, 하사엘과 요람-아하시야와의 전쟁일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고고학자들이 이 의견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11" align="aligncenter" width="3855"] 텔 단 비문 (Tel Dan Stele). 아람 왕 하사엘의 시대에 고대 아람어로 기록했을 이 비문에는 하사엘의 전쟁 상대였던 이스라엘과 유다를 말하고 있는데, 파란색 글씨는 “이스라엘의 왕”, 빨간 색 글씨가 “다윗 왕가”이다. 이 비문은 현재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caption]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자엘이 남왕국 유다를 가리킬 때에 “다윗 왕가”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기원전 9세기에 아람 사람들이 다윗을 알고 있는 겁니다! 이 돌판의 발견으로 다윗이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 후대에 글 꽤나 쓴다는 사람이 창작한 문학 작품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일 것이라는 주장을 단번에 뒤집힌 것이지요. 그리고, 다윗 왕이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었고, 왕가의 시조인 다윗(기원전10세기)을 따라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이 유다 왕국을 이미 적어도 기원전 9세기부터 “다윗 왕가”라고 불렀다는 것이 확실해 진 것입니다.
다윗의 역사성을 보증하는 묻혀있는 고고학 유물들이 얼마나 더 많이 발견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매년 여름마다 이스라엘의 이곳 저곳의 발굴 지역에서 발견되는 발굴물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왕에 대한 단편적이고 성공적인 통치와 건축에 대한 정보 전달 위주의 고대 서아시아의 기록과는 달리, 구약 성경 에서 전하고 있는 왕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그야 말로 구약성경 만의 독특한 왕들의 역사 기록방식이었습니다. 왕의 긍정적이고 성공한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 왕이 저질렀던 온갖 악행들마저도 거름종이 없이 기록된 성서를 보면서, 많은 학자들은 이 성서의 내용이 허구에 근거한 문학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어느 고대 국가의 역사 기록이 자기 왕에 대한 죄악상을 그렇게 낯낯이 기록했냐는 거지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한 다윗입니다. 고난의 삶을 헤치고 왕이 된 영웅적인 인물로 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에 왕이 저질렀던 성적인 범죄들을 적나라하게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왕자들 간의 암투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이야기들을 드러낸다는 것은 고대 역사 기록의 상식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윗과 다윗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보건데, 다윗이 역사적인 인물이었다기 보다는 고대 이스라엘 문학에서 왕국의 시조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는 설화에 등장하는 허구적인 주인공에 불과하며, 역사성을 담보하기 힘들지 않냐는 의구심을 품습니다. 역사적인 증거를 중요시 하는 학자라면 자연스럽게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일군의 고고학자들이나 역사 학자들은 정말 그렇다고 주장하는 많은 논문들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수많은 전쟁을 치루었다는 이야기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전쟁을 했다고하는 그 나라의 기록을 아직 발굴하지 못했을 뿐더러, 가끔씩 발굴되는 비문이나 토기에도 다윗과 벌인 전쟁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12" align="aligncenter" width="3043"] 여로보암이 쌓은 제단. 텔 단(Tel Dan)에서 발굴된 제단 터. 여로보암 시대로부터 기원전 2-3세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던 제단의 터가 발굴 되었다[/caption]
1993년과 94년에 걸친 고고학 발굴이 텔 단(Tel Dan)에서 있었습니다. 사실 이 때에 발굴 책임자인 비란(Biran)이 발굴하고 싶었던 것은 북왕국 첫번째 왕이었던 여로보암의 흔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곳에서 여로보암이 쌓은 제단 터부터 시작해서 고고학 역사에 오랫동안 회자될 중요한 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에서 백미를 꼽으라면, 현무암에 아람어로 새겨진 돌판일 겁니다.
기원전 9세기에 기록된 이 돌판에는 의례 고대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아람 왕 하자엘이 승리한 전쟁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돌판에는 하자엘이라는 이름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치룬 전쟁의 상대편이 눈에 띕니다. 왜냐하면, (북왕국)“이스라엘의 왕”과 “다윗 왕가”(남왕국 유다)이라고 쓰여져 있기 때문이지요. 아쉽게도 깨진 돌판에서는 도대체 이스라엘과 유다의 어느 왕들과 전쟁을 했는지 그 이름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돌판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단서를 주었습니다. 왕하 8:7-15에는 하자엘이 아람의 왕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자엘이 왕이 되면 이스라엘의 자손들(북왕국과 남왕국 모두)벌이게 될 엘리사의 잔혹한 전쟁 예언이 나옵니다(왕하 8:12). 그리고서는 곧이어 서로 친족 관계인 요람(북왕국)과 아하시야(남왕국)가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 왕 하사엘과 전쟁을 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왕하 8:28). 현무암 돌판이 기록된 기원전 9세기에 아람 왕과 이스라엘, 그리고 유다 왕이 벌인 전쟁의 이야기는 아마도 열왕기서에 기록된 것처럼, 하사엘과 요람-아하시야와의 전쟁일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고고학자들이 이 의견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11" align="aligncenter" width="3855"] 텔 단 비문 (Tel Dan Stele). 아람 왕 하사엘의 시대에 고대 아람어로 기록했을 이 비문에는 하사엘의 전쟁 상대였던 이스라엘과 유다를 말하고 있는데, 파란색 글씨는 “이스라엘의 왕”, 빨간 색 글씨가 “다윗 왕가”이다. 이 비문은 현재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caption]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자엘이 남왕국 유다를 가리킬 때에 “다윗 왕가”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기원전 9세기에 아람 사람들이 다윗을 알고 있는 겁니다! 이 돌판의 발견으로 다윗이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 후대에 글 꽤나 쓴다는 사람이 창작한 문학 작품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일 것이라는 주장을 단번에 뒤집힌 것이지요. 그리고, 다윗 왕이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었고, 왕가의 시조인 다윗(기원전10세기)을 따라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이 유다 왕국을 이미 적어도 기원전 9세기부터 “다윗 왕가”라고 불렀다는 것이 확실해 진 것입니다.
다윗의 역사성을 보증하는 묻혀있는 고고학 유물들이 얼마나 더 많이 발견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매년 여름마다 이스라엘의 이곳 저곳의 발굴 지역에서 발견되는 발굴물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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