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이웃의 설움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세상은 먼저 내미는 손길의 따뜻함으로 훈훈해 질겁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웃의 간절함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세상에는 나눔이 넘쳐날 것입니다. 정치적인 억압으로 억울함을 외치는 이웃의 애절함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세상에는 정의라는 디딤돌 위에 다시 서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이 어묵으로 장난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철부지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들이 장난으로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돌을 맞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돌을 던지는 그들은 자기의 재미 만 즐길 줄 알 뿐, 상처 받고 고통 받은 이들의 아픔을 모릅니다. 감성이 마비가 되었고, 이성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대양 한 가운데의 무인도와 같습니다.

Gethsemane1

겟세마네에 섰습니다. 그날 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너무나 힘드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깨어서 도와달라고 하십니다 (마 26:38; 막 14:34). 그리고는 그 동산 나무 사이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눅 22:44).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야 지금 그 마음이 어찌되었든, 당장 내가 피곤하니 그저 잠만 잘 뿐이었지요. 내 마음을 함께 가지라고 함께 깨어서 기도하자고 아무리 권면해도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처럼 간절함도 급박함도 없었습니다. 단지 몸이 고단할 뿐이었습니다.

"그래 그냥 자거라. 너희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구나."

아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고 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모르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칼이나 휘두르는 제자들의 한심함을 보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이것까지 참으라."(눅 22:51) "칼로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 26:52)고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그저 제 목숨 구하겠다고 도망치는 제자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신 예수님의 가슴은 어땠을까요?

Gethsemane2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지길 원하고, 예수님의 기도가 내 기도가 되기를 원하기 보다는, 내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라 착각하고, 내 기도가 곧 예수님의 기도가 되기를 주님께 강요하는 제 모습을 겟세마네의 나무들 사이에서 바라 보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슬펐습니다.

너희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구나 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