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과 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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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1
헤롯은 유대아 땅의 왕으로 기원전 37년부터 4년까지 통치하였습니다. 헤롯 대왕은 살아 생전 건축한 많은 요새들과 수로, 극장들과 공공 건물 등으로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지요. 헤롯의 아버지는 안티파터 (Antipater) 라 불리는 에돔 사람입니다. 에돔 사람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아랍인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 당시 에돔 지역은 이스라엘의 사해 남부로부터 에일랏까지 이르는 이스라엘의 남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안티파터는 하스모니아 왕조의 통치 아래에서 귀족 세력으로 영향력을 끼치던 가문이었습니다.
안티파터는 정치적인 감각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로마의 카이사르 (Caesar) 와 폼페이 (Pompey) 사이의 갈등 속에서 카이사르의 편을 들어서 승승장구를 하게 되거든요. 카이사르가 폼페이와 전쟁을 할 때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포위되어 오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안티파터가 직접 군대를 끌고가 카이사르가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어요. 그래서 기원전 47년에 카이사르는 안티파터를 유대아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을 합니다.
안티파터는 유대아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된 후, 불과 4년뒤에 암살 당하지만,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 (Antonius) 는 안티파터의 아들들인 파사엘과 헤롯을 각각 분봉왕 (Tetrarchy) 으로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을 통치하게 합니다 (기원전 41년). 곧 유대인들이 헤롯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게 되요. 폼페이에 의해서 무너진 유대인들의 왕조인 하스모니아 왕국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티고누스 (Antigonus) 가 유대인들, 그리고 파르티아 사람들과 연합하여 40년에 헤롯을 반대하는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헤롯은 재빨리 로마로 갑니다. 자신의 통치권에 대한 재확인과 로마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원로원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게 되지요. 갈릴리 뿐 아니라, 온 유대아를 다스리는 왕으로 임명을 받아서 돌아오게 되거든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헤롯을 왕으로 임명한 것은 안토니우스였지만,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원로원과 한 몸이었던 옥타비아누스는 점점 악화되는 안토니우스와의 관계에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헤롯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원했습니다. 헤롯이 다스리는 갈릴리 지역 뿐 아니라, 유대아를 포함한 지역은 안토니우스가 다스리는 이집트와 동유럽의 땅을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했거든요. 여기를 막아 버리면 혹, 전쟁이 나게 되더라도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기에 헤롯의 도움이 필요했던 거지요. 결국 서로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헤롯이 갈릴리, 사마리아, 이두메아, 유대아 지역을 다스리는 의 왕이 된 것입니다. 로마가 왕으로 승인하기는 하였지만, 유대아 땅에서의 내부 투쟁이 곧바로 멈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3년간에 걸친 전쟁으로 안티고누스를 따르는 유대인 세력을 진압하면서, 37년부터 실질적인 무소불위의 왕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헤롯의 근심 걱정이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어요. 옥타비아누스와 손잡고 왕이 되었으나, 로마의 거대한 제국의 영토 분할에 따르면, 헤롯은 안토니우스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했기 때문입니다. 헤롯과 옥타비우스, 그들 만의 밀약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이것이 들켜 버리게 되면, 안토니우스의 군대가 헤롯을 치러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시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아 땅에 진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헤롯은 만약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가 공격할 경우 자기의 통치 지역 남쪽에서 이들을 막을 요새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선택된 곳이 마사다입니다.
이두메 지역과 유대아 지역의 경계에 있는 마사다는 이미 40년에 벌어진 반 헤롯 전쟁 때에 헤롯이 가족들을 피신시켜 그 안정성이 검증된 장소 였습니다. 사해 바다로부터 400미터의 절벽과 급한 경사길 위에 솟아있는 단독 봉우리의 마사다는 그야 말로 천혜의 요새였거든요. 그래서 헤롯이 왕이된 37년부터 마사다가 증축되고 보강됩니다. 31년에야 더이상의 공사 없이 중단이 되었는데요. 31년에 벌어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의 군대가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하면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도 죽었고 더 이상 헤롯을 위협하는 세력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안티파터는 정치적인 감각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로마의 카이사르 (Caesar) 와 폼페이 (Pompey) 사이의 갈등 속에서 카이사르의 편을 들어서 승승장구를 하게 되거든요. 카이사르가 폼페이와 전쟁을 할 때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포위되어 오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안티파터가 직접 군대를 끌고가 카이사르가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어요. 그래서 기원전 47년에 카이사르는 안티파터를 유대아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을 합니다.
안티파터는 유대아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된 후, 불과 4년뒤에 암살 당하지만,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 (Antonius) 는 안티파터의 아들들인 파사엘과 헤롯을 각각 분봉왕 (Tetrarchy) 으로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을 통치하게 합니다 (기원전 41년). 곧 유대인들이 헤롯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게 되요. 폼페이에 의해서 무너진 유대인들의 왕조인 하스모니아 왕국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티고누스 (Antigonus) 가 유대인들, 그리고 파르티아 사람들과 연합하여 40년에 헤롯을 반대하는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헤롯은 재빨리 로마로 갑니다. 자신의 통치권에 대한 재확인과 로마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원로원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게 되지요. 갈릴리 뿐 아니라, 온 유대아를 다스리는 왕으로 임명을 받아서 돌아오게 되거든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헤롯을 왕으로 임명한 것은 안토니우스였지만,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원로원과 한 몸이었던 옥타비아누스는 점점 악화되는 안토니우스와의 관계에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헤롯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원했습니다. 헤롯이 다스리는 갈릴리 지역 뿐 아니라, 유대아를 포함한 지역은 안토니우스가 다스리는 이집트와 동유럽의 땅을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했거든요. 여기를 막아 버리면 혹, 전쟁이 나게 되더라도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기에 헤롯의 도움이 필요했던 거지요. 결국 서로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헤롯이 갈릴리, 사마리아, 이두메아, 유대아 지역을 다스리는 의 왕이 된 것입니다. 로마가 왕으로 승인하기는 하였지만, 유대아 땅에서의 내부 투쟁이 곧바로 멈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3년간에 걸친 전쟁으로 안티고누스를 따르는 유대인 세력을 진압하면서, 37년부터 실질적인 무소불위의 왕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헤롯의 근심 걱정이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어요. 옥타비아누스와 손잡고 왕이 되었으나, 로마의 거대한 제국의 영토 분할에 따르면, 헤롯은 안토니우스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했기 때문입니다. 헤롯과 옥타비우스, 그들 만의 밀약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이것이 들켜 버리게 되면, 안토니우스의 군대가 헤롯을 치러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시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아 땅에 진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헤롯은 만약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가 공격할 경우 자기의 통치 지역 남쪽에서 이들을 막을 요새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선택된 곳이 마사다입니다.
이두메 지역과 유대아 지역의 경계에 있는 마사다는 이미 40년에 벌어진 반 헤롯 전쟁 때에 헤롯이 가족들을 피신시켜 그 안정성이 검증된 장소 였습니다. 사해 바다로부터 400미터의 절벽과 급한 경사길 위에 솟아있는 단독 봉우리의 마사다는 그야 말로 천혜의 요새였거든요. 그래서 헤롯이 왕이된 37년부터 마사다가 증축되고 보강됩니다. 31년에야 더이상의 공사 없이 중단이 되었는데요. 31년에 벌어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의 군대가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하면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도 죽었고 더 이상 헤롯을 위협하는 세력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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